한국인을 위한 교양 사전
일요일에 글 쓰다가 컴퓨터 메인 보드가 맛이 가서 날린 덕에 다시 작성. -_-

규항닷넷에 보면 강준만 교수가 김규항씨가 한국에서 지식인 사전을 쓸 수 있을 만한 사람이라는 요지의 글을 쓴 것을 옮겨놓은 포스팅이 있다. 내용을 갖다 붙여 놓자면 다음과 같다.

‘김규항 사전’을 아십니까?
위선에 대한 혐오가 김규항의 글이 갖는 마력을 다 말해주진 못한다. 김규항에겐 타고난 그 무엇인가가 있다. 형안이라고나 할까? 서양의 일부 똑똑한 지식인들은 자기 사전을 만든다. 어떤 단어에 대해 자기 생각을 마음껏 펼치는 그런 사전 말이다. 국내 지식인들 가운데 그런 시도를 한 분이 없지는 않다. 나는 한국에서 그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김규항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후략)
이 책, <한국인을 위한 교양 사전>의 첫인상은 '강준만 사전'이라고 할 법하다고 생각했는데 다 읽고 난 소감은 그리 부를 만큼은 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못내 아쉽다.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교양: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류의 서구 중심적인 교양을 벗어나서 한국적인 교양에 대해서 풀어보겠다는 의도로 쓰여진 책인데, 그 형태가 사전 형태를 띠고 있는 것도 그렇고, 항목들도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사회 문제 중심으로 지극히 강준만 교수답게 선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은 '강준만 사전'이라고 부를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지식인 사전'이라는 단어가 주는 도발적인 인상이 매력적이지 않은가?

그런데 항목 자체의 설명에 들어가면 상당히 중립적인 말투로 참고 자료를 인용하는 방식으로 쓰여져 있어, 강준만 교수의 생각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 눈에 띈다. 아마도 <인물과 사상> 종간사에서 밝혔듯이,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논쟁한다는 것에 지쳤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 더더욱 아쉬운 부분이다. 강남 신드롬이나 행정수도 이전과 같이, 할 말이 분명히 많을 것 같은 항목의 설명을 보면 이런 중립적인 논조가 확연히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강남 신드롬
강남은 그간 5가지 범주로 사용돼 왔다. ① 서울의 한강 이남, ② 강남/서초/송파/강동구, ③ 강남/서초/송파구, ④ 강남/서초구, ⑤ 강남구 등이다. ①의 범주에 따르자면 영등포도 강남이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강남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강남'은 보통 ④번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강남/서초 2개구의 면적은 서울 전체의 13.4%, 인구는 9.2%에 불과하지만, 한국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중략)

조용경은 언론에 비친 '강남 권력'의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였다. ① 한국 '고급' 아파트의 65.9%가 강남에 몰려 있고, ② 한국의 파워 엘리트 중 절반 이상이 강남 지역에 집중 거주하고 있고, ③ 강남의 개원의 수는 서울 시내 총 개원의의 28%를 차지하며, 전국 성형외과 개원의의 절반 가량이 강남에 밀집해 있고, ④ 서울신용보증재단의 지원이 70% 이상 강남 지역 기업에 집중되고 있고, (중략)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신학림은 최근 5년차 이하의 기자들을 놓고 '8학군 기자'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 이는 말 그대로 강남 지역 8학군에서 '배경'이 좋은 집에서 크고 서울대나 연/고대 같은 대학을 나온 기자들을 지칭하는 말로 이들은 자신이 속한 기득권의 이익에 따라 대부분의 사건을 보고 취재한다는 것이다. 신학림은 갈수록 '8학군 기자'들이 늘어나면서 사회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사라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중략)

자식을 강남으로 진출시켜야 할 가장 큰 이유는 서울대 입학을 위해서다. "명문대에 입학하는 길은 우편번호에 달렸다."는 말은 미국에서만 통용되는 게 아니다.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 조은은 수능점수에 따른 대학의 서열은 거의 학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같이 가고 있기 때문에 웬만한 사회학자는 대학의 순위에 맞춰 학부모들의 직업과 소득, 학력, 그리고 거주지까지 어느 정도 맞힐 수 있다고 말한다. (중략)
메시지 자체는 중립적이지 않은데 중립을 가장한 인용과 편집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썩 당당하다고 보기는 힘든 부분이다. 특히나 행정수도 이전 같은 항목의 설명은 수십편의 신문 보도를 맥락없이 연달아 인용해 놓은 것에 그치고 있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 외에도 주로 인용하고 있는 글들이 신문 보도라는 단점이 있는데, 이것은 출자총액제한이나 리디노미네이션, 사립학교법 개정과 같은 시의성 있는 소재를 다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반면 반대로 생각해서 신문 보도를 중심으로 중립적인 어조로 다양한 테마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전면적으로 논쟁이 붙고 있는 테마에 대한 찬/반 의견을 모두 접할 수 있다는 점은 이 책의 미덕이다.

한국에서 전면적인 논쟁의 대상이 아닌 항목에 대해서는 주관적으로 생각을 서술하는 경우도 많이 있는데, 벙커도시, 타워팰리스, 디마케팅 같은 항목은 특히 눈길을 끈다. 벙커 도시라고도 불리는 미국의 주거 공동체 CID (common-interest developments)는 한국의 타워팰리스같은 주상 복합 건물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① 비슷한 계층들이 모여 산다, ②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된다, ③ 공동 편익 시설이 대단히 잘 준비되어 있고, 이를 매개로 배타적인 친분 관계를 쌓는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CID 주민들이 범죄에 민감하며 사형 제도에 호의적이고 공공 복지에 돈을 쓰는 데에 대단히 인색하게 되는 등, 보수 지향적이 되어 간다는 얘기는 타워팰리스와 같은 주상 복합 건물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와 같은 계층 분리는 공간 면에서 뿐 아니라 소비 성향 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것을 설명하는 단어가 디마케팅이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중요하다'라는 구호가 설명해주듯이, 수익에 도움이 안 되는 소비자를 의도적으로 밀어내고 구매력이 높은 계층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펼치는 것을 말하는데, 한국의 은행에서도 이런 바람이 불어 번호표 없이 긴 줄을 서게 하거나, 동전 교환을 기피하거나, 공과금 수납을 거부하거나, 객장의 소파를 없애는 등 소액 예금 고객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를 줄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전세계 부자들의 모임인 다보스 포럼에서조차 빈부 격차와 세계화의 부작용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니 말 다한 것 아닌가.

사실 이 책을 통해서 이런 테마는 처음 듣는 얘기다 싶은 재미는 덜한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숙한 테마들에 대해서 각계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는 점은 읽는 즐거움에 일조한다. 이것은 강준만 교수가 엄청난 양의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경험인데, 새삼스럽게 그의 부지런함에 감탄하는 부분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는 있는 책이다.
by 매운맛나리 | 2005/02/17 00:01 | 웰빙 : 책 | 트랙백(2)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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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BookHolic at 2008/10/06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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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이 자료에 천착하는 시발점 2004년쯤이었을까. 서점을 돌아다니다 이 책을 우연히 발견하고 나서 곧바로 책을 샀다. 이 책을 산 이유는 제목도 디자인도 아니었다. 순전히 지은이가 강준만이었기 때문이다. 강준만이 교양사전을 썼다고? 지금이야 강준만이 자료 수집과 분석에 천착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지만 당시엔 사뭇 충격적이었다. 혹시나 대한민국의 어떤 성역도 인정하지 않고 실명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던 논객의 모습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하는 우려도......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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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한국인을 위한 교양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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