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적 충동
 인간의 비이성적 심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어쩌구 써 있는데 책 뒷면에 장하준 교수[매운맛나리] 추천이 붙어있길래 낼름 집어들었습니다. 저는 책 고를 때 생각 많이 안 합니다….

 괴짜경제학[매운맛나리]으로 친숙해진 행동경제학이란 분야가 있잖아요? 대충 인간은 고전경제학적인 가정대로 주어진 모든 정보를 종합하여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경제 주체가 아니라 본능과 충동에 의해서 어쩌고…하는 그거말이죠. 괴짜경제학 자체는 엄밀히 행동경제학적 관점은 아니지만 이 이후로 인간 심리에 기반한 경제적 행위의 분석에 대한 책들이 많이 쏟아져 나온 게 사실이죠. 요 책은 행동경제학적 관점에서 거시경제를 바라보는 책입니다.

 요약하자면 이래요, "야성적 충동에 사로잡히는 비이성적인 경제 주체를 가정하는 행동경제학적 접근이 미시경제적 분석에서만 유효한 게 아니라 거시경제적 분석에서도 유효하고, 오히려 그런 관점을 채택하지 않으면 과거의 대공황이나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또 전세계적인 금융위기를 설명할 수 없다, 게다가 더 나아가서 이런 관점은 원래 대공황때 케인즈가 내렸던 처방에 포함되었던 건데 신고전주의자 니들이 슬그머니 빼버렸잖아! 나의 케인즈는 이렇지 않다능 돌려줘 내 자비 젝터"

이어지는 내용▼

 근데 직관적으로 생각하지면 그렇잖아요. 미시경제에서 합리적 경제 주체를 가정하는 표준경제학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이상 현상이 발생하는데 거시경제에서라고 그런 일이 안 생기겠어요? 괴짜경제학이나 경제학 콘서트[매운맛나리]나 승자의 저주 같은 책에서 논하는 내용을 닷컴 버블이나 서브프라임 모기지나 우리나라의 부동산 거품에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하게 추리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잖아요….

 하지만 학술적으로 이런 주장을 펼치는 건 많은 연구 결과와 실증 자료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책의 의의는 적지 않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행동경제학을 소개하는 책들은 많았지만 그런 책들이 사실 뭐 알든 말든 그닥 당장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최신 경제학 트리비아를 소개하는 수준에 그쳤다면 이 책은 그런 관점을 지금 바로 닥쳐있는 금융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는 데에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인생에 도움이 되는 기분이 드는 것이죠.

 요 책에서는 그러한 야성적 충동을 자극하는 요인으로 자신감, 공정성, 부패와 악의, 화폐 착각 등 몇 가지를 꼽고 있는데, 이건 설명보다 책 사서 읽으시는 게 빠를 것 같고…. (와 리뷰 무성의) 제 경우 책을 읽고 나서 흥미로웠던 것은 인간 심리가 경제 성장과 물가 상승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저의 망상추정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근거없는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주목하는 언급은 이거예요. "물가상승률이 2퍼센트가 아닌 제로일 때 임금은 약 0.75퍼센트 더 상승했다." 이거저거 다 치우고 대략 보면, 사람들은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 화폐량과 가치 총량의 변화가 없을 때에도 0.75%의 임금 인상을 원한다는 뜻이지요? 뭐, 수치상으로 미미해보이지만 이게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런 성향으로 인해서 기업은 아무런 이유없이 임금을 더 올려줘야 하고 그 부담으로 인해서 실업률이 1.5% 증가하거든요.

 이 현상을 설명하는 원인을 좀 과감하게 추정한다면, 근속년수가 올라간 노동자는 작년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좀 더 과감하게, 사람에겐 무조건 과거보다 더 부유해지고 싶어하는 성향이 있어서라면 어떨까요? 작년과 똑같은 일을 해도 임금이 0.75%의 올라야 정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새로운 상품을 개발한 사람이라면 남보다 더 부유해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이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거 맞긴 한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좀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별 다를 것도 없지만 몇가지 기능을 추가한 LCD TV는 가격이 더 올라가잖아요? 근데 뭐 TV 보는 거 그대로 볼 거고, 새 TV 때문에 딱히 우리가 더 행복해졌다든가 그렇지도 않아요. 쌀이 한 가마니 더 생산된 거하고 비교해보면 그런 기능이 정말로 가격 상승분을 정당화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서비스 비용이 올라가는 것도 마찬가지지요. 막말로 작년하고 똑같은 일 해도 임금은 보통 상승

 이렇게 사회 전체적으로 거래하는 재화의 실질적 가치가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도 매 년 경제 규모가 늘어나고 모든 물건의 가격이 상승하는 이유를 저는 "사람이 무조건 과거보다 부유해지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추정하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경제가 5% 성장했다는 것은 모든 거래되는 것들의 명목 가치가 5% 상승한 것의 다른 표현이 아니냐는 거죠.

 모든 화폐 단위로 계산되는 가치가 동시에 상승했다면 내 구매력에 아무런 변화도 없겠죠. 막말로 연봉이 10배 올랐지만 물가도 900% 상승하면 그냥 아무 일도 없는 거쟎아요. 하지면 인간은 물가 상승률을 고려한 자산의 실질 가치의 상승이 아니라 명목 가치가 올라가는 것에 반응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몇%건 자산의 명목 가치가 올라가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고, 그래서 경제는 실질적으로든 명목상으로든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처럼 보여야)하는 것 아니냐는 추정인 거죠.

 근거없는 뻘소리로 마치긴 하는데 미국 사례라 중간 부분이 읽기 걸리적거리는 것만 빼면 책은 봐둘 가치가 충분합니다. 요 카테고리 제대로 업데이트도 상당히 오랫만이네요. 그간은 줄창 사진 책만 사다 봤는데 이런 실용서적은 딱히 소감문이라고 뭐 올릴 것도 없고 그런지라 인증샷이나…. 일반 책도 좀 봐야 하는데 알콜성 난독증이 도져서….
by 매운맛나리 | 2009/07/25 20:24 | 웰빙 : 책 | 트랙백 | 핑백(1)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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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Starless☆Night :.. at 2009/10/25 00:23

... 야성적 충동[매운맛나리]</a>  이 책 은 나열한 이 모든 책을 통합하는 우월한 시야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미약하나마 기반 지식이 있어서 이해 할 수 있던 것일 수도 있겠다 싶지만, 그보다는 책이 다루는 주제가 매우 명확하게 우리 모두가 지금 당장 알고 싶어하는 것인 동시에 그 설명이 매우 명쾌하고 단순하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공부를 시작할 무렵에 누군가 이 책의 개정판 이전 판인 을 가이드해줬다면 앞서 나열한 책들을 하나도 볼 필요도 없었겠다 ... more

Commented by 오리대마왕 at 2009/07/26 19:17
와 사진책이 참 많군요. 맛나리님 댁에 조만간 놀러갈께요. (한두권 없어진다고 해도 못 알아채겠지? 후후훗)

인간은 원래 합리적이지 않은 바보멍충이라는 것을 심리학적으로 풀어낸 "비합리성의 심리학"(http://kingori.egloos.com/4010805) 도 재밌더군요. 시간 나면 한번 보세요.
Commented by 매운맛나리 at 2009/07/26 21:13
요즘은 진화심리학이 인문사회학의 전 분야를 다시 쓰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시간 나면 봐야겠네. 근데 나 이제 글자 잘 못 읽는 거 같아….
Commented at 2009/07/29 16:2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매운맛나리 at 2009/07/29 17:21
와 좋네 근데 5시에 출발하려면 빡빡할 거 같은데 7시쯤으로 하자?
Commented at 2009/07/30 08:3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매운맛나리 at 2009/07/30 15:49
나랑 henjeon 밖에 시간이 안 되네
langley는 OBT 임박이라
Commented at 2009/07/30 20:1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플라피나 at 2009/08/01 21:15
행동경제학이란 단어가 나왔나요. 이거 은근히 간지네요..
의미가 괜찮게 와닿는 것 같습니다.

근데 행동경제학이라고 하면-_- 그러니까 숫자와 xx레이터보다는 논리와 심리의 영역이 주무대다보니, 시대와 차원에 따라 제각기 해석할 수 있는 '입맛대로' 경제학이라고도 생각됩니다. 가령 한국의 빨갱이 vs 쌀쿡의 인종주의자.. 처럼요.
Commented by 매운맛나리 at 2009/08/01 21:43
ㅎㅎ 근데 의외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단 말이죠-
이거에 이어서 읽고 있는 수퍼 크런처가 딱 이런 경향을 짚어주고 있는데 (진작 읽었어야 했거늘)
천재 화백 마사토끼님의 소개 만화로 설명을 갈음합니다
http://kameoka.tistory.com/29
Commented by 플라피나 at 2009/08/01 21:48
푸- 하하하하 만화 보고 정말 뿜었습니다.
근데 가능하겠군요. 이쪽은 확실히 숫자의 노선 위를 달리고 있네요.
안 그래도 그레이트 빈티지니 어쩌니 이런 말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데 말예요.

야성적충동/수퍼크런처 갈음해놓겠습니다 =) 추천 감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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