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샌드위치 위기론'이란 말은 원래 이건희 회장이 올해 1월 25일 전경련 회장단 회의의 인터뷰[중앙일보]에서 처음 언급했던 이야기인데, 거칠게 줄이면 중국은 추격해오고 일본은 저만치 앞서가고하는 위기 상황이니 우리 쫌 열심히 해보잔 요지의 얘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공감을 얻으면서 이 위기에 대한 대책으로 대략 제조업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허리띠를 졸라 매야 하고, 잘 나가는 수출 기업은 잘 밀어줘야 하며, 기업 규제도 줄여서 기업 하기 좋은 환경도 만들어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서 FTA나 동북아 금융 허브 같은 거 해야 한다는 식의 정책에 힘이 많이 실리게 되었더랬습니다.
그런데 책은 이 '샌드위치 위기론'이라는 문제 의식이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적 위기를 바라보는 적절한 프레임이 아니며, 조직론의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오히려 한국 기업들이 채용하고 있는 조직의 구조 자체가 위기의 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문제 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경제학자 입에서 조직론이라는 다소 생소한 개념이 나온다는 것이 흥미로운데, 사실 조직론이란 분야가 다루고 있는 문제들은 근래 흔하게 볼 수 있는 '팀장 리더십'이니 '10인 이하의 조직을 잘 이끄는 법'이니 좀 더 나아가서 '보고 잘 하는 법'이니 하는 회사 조직과 그 운용에 대한 문제들이더군요. 아무래도 경제학 쪽에서의 접근이니만큼 좀 더 체계적이고 실증적이란 차이는 있습니다만.
아주 거칠게 책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모든 조직은 다른 어떤 목적보다도 그 자신의 '영속성'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데, 이것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회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회사가 계속 존재할 것이란 가정이 없으면 구성원들이 다른 회사로 가버릴테니까요. 인류 역사상 가장 영속적인 조직에 가까운 대표적인 조직들이 있는데, 책에선 바로 가족과 군대와 교회, 이 세 가지 조직을 꼽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갖고 있는 기업이란 조직은 오랜 역사를 통해서 조직이 겪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온 이 세 가지 조직 중에서 적절한 모델을 차용해오는 것이 합리적인 전략이었다고 설명하면서, 유럽의 정밀 기계 기업들은 가족적 조직 모델을, 미국과 같은 경우는 주로 교회의 조직 모델을, 일본과 같은 경우는 군대에서 그 모델을 차용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본 경제가 성장 가도를 달렸던 당시에 경제학자들은 일본 기업과 미국 기업 사이에서 발생하는 생산성 차이를 전혀 이해하질 못했고, 결국 연구를 거쳐 일본 기업에 존재했던 팀제란 게 빠른 의사 결정과 노하우 전수에 유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사실 이 팀제라는 것이 군대의 개별적인 작전 단위인 소대의 개념과 유사한 모델이었던 것이죠. (지금에 와서는 팀제가 아닌 회사를 찾기가 더 힘들지 않나 싶습니다)
책은 우리나라가 일본에서 기업 모델을 가져온 만큼 우리나라 기업들은 군대 모델을 많이 차용하고 있는데, 일정 수준 이상 산업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점차 성장이 더뎌지고 양적인 성장만으로는 기업의 존속을 보장할 수 없게 되면서, 과거 군대식 기업 모델이 보장했던 평생 고용이나 연공 서열제를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군대식 모델에 대해서 부연하자면, 책에서는 군대란 것이 구성원 모두에게 '우리는 전우'라는 의식을 심어주고 구성원 개개인에게 신경쓰는, 생각보다 인간적인 조직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누가 결정하고 누가 희생하며 은퇴한 장교나 사병의 미래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등 수많은 문제에 대해서 노련한 답을 제공하는 조직이기도 하다는 설명도 덧붙입니다)
즉, 한국 기업들은 '열심히 일하면 조직에 계속 남아 승진하면서 점점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구성원에게 전달하고 있었는데, 고도 성장기를 지나고 기업이 조직 규모를 계속해서 키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이 메시지를 일관되게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경제 발전으로 인해서 한국 기업들이 조직 모델을 바꿔야만 하는 위기 상황에 봉착한 것인데, 책은 한국 기업들이 여기서 능률 향상을 위해서 구조 조정을 도입하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봅니다.
구조 조정을 통해서 구성원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일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전략을 택하기 쉽고, 회사의 노하우는 구조 조정 당하는 구성원과 함께 잊혀져버리며, 유능한 사람들은 다른 안정된 회사로 옮기거나 내부 경쟁이 강화되어 결과적으로 조직 전체적으로 효율이 떨어지게 되는데, 이것이 한국 기업들이 맞이하고 있는 문제의 본질이라는 것이죠.
책 자체의 설명도 만연체에 가깝고 이 주제 저 주제를 왔다갔다 하는 터라 읽는 데는 흥미롭지만 논지가 명확하게 드러나진 않는 편이라 정리하기는 꽤 까다로운데, 그나마 굉장히 거칠게 정리한 것이라 구멍이 많을 것 같습니다. 모쪼록 양해 부탁드리고….
책의 주장이나 결론과는 별개로, 저도 어줍잖게나마 회사에서 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다보니, 조직 구조가 개인에게 어떤 비전을 주는가, 어떤 조직 모델에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는가 대략적이나마 접하게 되고, 제도권 경제학에서 이런 논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저에게는 꽤 유용했습니다.
책은 기업 외에도 교회, 동창회, 공기업을 비롯하여 조직 폭력배와 다단계판매 등의 조직 모델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사채와 다단계 기업, 조폭(바다이야기 사태)과 같은 조직이 가장 역동적이고 효율적으로 동작하는 상태라서, 이대로 지하 경제가 성장하고 양극화가 심화되면 남미 국가와 같은 상태가 될 것 같다는 우려는 저도 전부터 직관적으로 느끼던 바와 일치해서 상당히 놀랍고 반가웠습니다.
한국 사회 전반에 존재하는 여러 조직에 대해서 조직과 구성원의 관계를 분석하고, 그를 통해서 한국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가 진단하는 이 책에는 한국의 국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일독의 가치가 충분히 있으니 흥미가 있으신 분들은 직접 읽어보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