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 [함흥냉면옥]
56번 국도 들어가는 휴게실에서 보는
비 개인 설악산
 여름 휴가로 하조대에 다녀왔습니다. 장마철(이제는 우기라고 부른다고 하나요?)인데도 날씨는 아주 맑았습니다! …돌아오는 날에만. 덕분에 저체온증 걸릴 정도로 물이 차서 거의 놀지도 못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56번 국도 미시령 동서관통도로에서 설악산 경치 구경은 잘 했습니다.
 옛날 미시령 고개 도로 생각하면 이렇게 설악산을 잘 구경하면서 갈 수 있는 길이 생긴 건 참 좋은데 민자도로라는 게 영 거슬리더군요. 이 도로도 똑같을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민자 도로라는 게 정작 민자 투자는 별로 없는데다가 투자 유치를 위해서 손해나면 정부가 일정 수입까지는 손실을 보전까지 해주거든요. 설악산 경치는 참 좋았는데 여기다가 굳이 민자 도로를 놓아야 했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복잡한 심경이었습니다. (민자 도로에 대해서 궁금하시면 이 글[매운맛나리]의 3번 문단으로 따라가시면 되겠습니다)

테러리뷰로 계속▼

가게 안에는 이렇게 사진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런 가게, 분위기에서 이야기가 느껴져서 좋아요
 얘기가 무거워졌는데 원래대로 돌아와서, 비가 와서 제대로 놀지도 못했는데 먹는 거라도 제대로 먹고 가야겠지 않나 싶은 오기가 들어서 '<함흥냉면옥>에 가보자!'란 생각으로 하조대에서 대충 30km 떨어진 속초까지 달려갔습니다.
 냉면 얘기가 나오면 으레 나오는 가게들 중에 위치 상으로 애매한 속초의 이 가게가 종종 끼어있는 것이 특이했던 기억이 있어서였는데요, 대략 영업한 지 20년(가게에서 물어보기론 50년)이 넘는 오래된 가게고, 함흥냉면에 명태살회를 얹어 먹는 것이 특이하다는 설명들을 하는데, 홍어나 가오리가 아니라 명태살회라니, 맛이 상상이 잘 안 가잖아요? 꼭 한 번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 근처(30km…)에 온 김에 후렭하고 들러봤습니다.

심플한 구성에 재료 사이의
선명한 컨트라스트가 인상적입니다
 이름이 난 가게 치고는 장마라 그런지 사람도 별로 없고 가격도 한 그릇 5,500원으로 싼 편이었습니다. 기본이 회냉면인 가게라 일행 중 한 분만 물냉면을 트라이하고 나머지는 냉면으로 통일했습니다. 점심 시간이 되기 전인 애매한 시각에 도착해서인지 나올 때까지 시간은 생각보다 좀 오래 걸렸어요.
 다른 평범한 회냉면과 비교해서 비빔장이 적은 편이고 아래에 진한 색의 육수가 좀 많이 들어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일단 아침도 안 먹고 거의 11시가 될 지경인데 배고파 죽겠습니다, 일단 먹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근데말이죠, 배고픈데 모르는 길 운전하고 오느라 좀 지치고 옆에선 먹기 시작하는데 사진 찍는 것 오랜만에 하니 죽을 맛이더군요! 사실 요 몇달간 카메라 메모리 카드가 고장나서 몇몇 가게에서 찍었던 사진들 꺼내지도 못하고, 새로 가는 가게에서 사진도 못 찍고….

사진 찍는 그 몇십초가
대략 이런 기분
 지금에야 새로 사긴 했습니다만, 이 가게에선 다른 분 카메라를 빌려서 찍었는데 손에 익지 않아서 흔들리고 떨린 것들이 많아서 몇 장 못 건졌습니다. 이번 리뷰 사진 품질에 대해선 모쪼록 양해 부탁드려요.
 어쨌든 인고의 시간(응?)을 거치고 드디어 시식!

아아아아아아아~~~
이 한 입으로 비만 왔던 이번 휴가도
좋은 추억만 남을 것 같은 기분☆
 아…. 한 입 먹은 감상은, 이런 맛을 겨우 '명태회살을 냉면에 얹어 먹는 것이 특이하다' 정도로 파삭파삭하게 표현하다니! 그 빈약한 표현이 정말이지 안타깝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일단 이 냉면, 기본적으로 회냉면이지만 심하게 맵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선 춘천옥 막국수[매운맛나리]성미당 비빔밥[매운맛나리] 같은 차분한 매운 맛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그런 맛과는 다르게 한식에서는 느껴보기 힘든 발랄한 맛이 인상적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양의 회,
사진의 세배 정도 되니 주문할 때는 주의 요망
(이미 먹기 시작한 뒤에야 아차, 사진! 생각이…)
 냉면 전체에 발랄한 맛을 더해주는 주인공은 바로 이 명태살회되겠습니다. 온 김에 제대로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회추가를 둘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무진장 많더군요. 하나만 갖고도 서너사람 먹을 정도로.
 반쯤 말린 상태의 명태포 같은 상태로 삭힌 회를 죽죽 찢은 뒤에 닭강정 비슷한 느낌으로 맵고 달게 양념한 것인데, 일단 항구가 가까워 재료가 좋은 덕인지 이게 원래 생선인가 싶을 정도로 전혀 비린 맛이 없는데다가 '수십년 된 전통의 맛'이란 문구에서 상상하기 힘든 도회적인 맛이 주는 가벼운 배신감이 유쾌하네요. 더운 날씨에 떨어진 식욕이 순식간에 되살아나는 드문 경험이었습니다.

특이하게도 맑고 차가운 육수가 나옵니다
 명태살회의 매콤달콤함한 맛이 자칫하면 어린애 취향의 싸구려 맛이 될 법 한데도 전체적으로 하나의 요리로 차분하게 완성되고 있다는 게 놀라운데, 바로 이 육수가 묵직하게 어른스러움을 더해 맛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고기를 삶지 않고 소꼬리뼈와 사골을 삶아서 육수를 낸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기름기도 없고 약간 쌉쌉한 것 같으면서도 깊은 맛이 매력적입니다. 다 먹어갈 때쯤 해서는 육수를 냉면에 부어서 한 사발에 먹는 것이 정석이라고 하는데, '아하, 그래서 육수가 차가웠구나'하게 됩니다. 그렇게 싹 남은 회조각과 면부스러기를 부셔 먹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진주냉면 맛 생각도 납니다.

날이 맑아서 사진이 잘 나왔어요
1층이 좀 좁다했더니 2층이 있었군요
 왜인지 최근엔 계속 한식 일품을 하는 가게만 들르고 있네요. 혼자서 들르자니 만만한 게 역시 한식을 하는 가게라 그런 듯도 싶지만, 그보다는 잘 알고 있고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요리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맛을 느낀다는 경험에서 매력을 느끼고 있어서인 것도 같습니다. 외국 요리야 신기한게 당연하지만 누구나 알 것 같은 한식에서 생각지도 못한 맛을 발견한다는 게 짜릿한 경험이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한식에도 진지하면서도 상큼발랄한 맛이 있다는 걸 발견한 게 이번 방문의 가장 큰 성과 아니었나 싶어요.


 주소는 강원도 속초시 금호동 482-150입니다. 블루리본 서베이[매운맛나리]에는 간단히 속초시 금호동 롯데리아 뒤라고만 소개되어 있는데, 사실 외지 분이 쉽사리 찾아가실 수 있을 것 같진 않고 내비게이터의 도움을 받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냉면을 좋아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동해안에 왔으면 해산물이지, 무슨 냉면이야?'라고 생각하고 제끼기에는 이렇게 생각 이상으로 세련되고 섬세한 맛을 놓치는 건 아깝단 기분입니다. 절품이라고 극찬하기엔 아쉬운 면도 있지만, 한식답지 않게 매콤달콤한 유머가 있는 맛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블루리본 서베이에서는 리본 한 개인 가게네요.
근처까지 가기만 하면(…)
의외로 찾기는 쉽습니다
by 매운맛나리 | 2007/08/24 23:47 | 웰빙 : 테러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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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Ryuciele at 2007/08/24 23:49
오오...이런 곳도 있었군요;
언제 한 번 찾아가 봐야겠습니다.
좋은 정보 늘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매운맛나리 at 2007/08/24 23:52
으흑 류시엘님 같으신 고수분이 이런 커멘트 다시면 부담스럽습니다;;;
뵌지도 꽤 오래 된 것 같은데 언제 한 번 뵈어야 하는데 말이죠. 하하
Commented by 빈틈씨 at 2007/08/25 16:09
네비없이 지방은 못갑니다 이제 (...)

강원도 가 본지 어언 수억년.(에라 어디서 이런 구라를! -0-)
Commented by jooddang at 2007/08/25 22:43
아흐.... 역시 차가 있어야돼...-_-
Commented by 매운맛나리 at 2007/08/26 22:25
빈틈씨 / 저는 애초에 내비 없이 운전을 해 본 적도 없…;
주땡 / 클클 차가 있다 쳐도 저거 먹자고 가는 건 무리;;
     잘 지내냐
Commented by 플라피나 at 2007/08/27 19:29
꺄오- 물냉에 대한 리뷰를 편애하는 저인데도 이번 비냉 리뷰,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P
신의 물방울 탓인지 혹은 그 짤방 소믈리에 탓인지, 요즘은 맛에 대한 은유의 수준이 다들 높아져서 즐겁습니다.

마지막 가게 사진은 도원향 같군요. 원색적인 간판에 하늘색이 대비되는 게..;
Commented by 매운맛나리 at 2007/08/28 08:00
하하하하 낯설지만 왠지 익숙하게 느껴지는 그런 느낌 말이죠!
놀리는 것도 놀리는 거지만 그 아저씨,
그런 표현을 만들어내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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