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자본의 천국, 대한민국
'투기자본의 천국' 출간[이정환닷컴]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어느새 해가 넘어갔습니다. 책이 출간된 것은 작년 4월 정도니까 게으름이 발목 잡은 것이 거의 반년을 가는군요. 어쨌든 다소 과격한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은 '한갖 사모펀드에 불과한 론스타가 어떻게 불법적으로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있었나, 그 뒤에 숨겨진 비리는 무엇인가'를 이정환 기자가 추적하며 작성했던 기사를 재편집해서 수록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정환닷컴 구독자 분들이라면 굳이 사서 읽지 않아도 괜찮을 법한 내용이고, 제 경우에도 이미 다 읽었던 글입니다만 이정환 기자를 지지하고 후원한다는 의미로 책을 샀습니다. (큰 금액 후원하는 것처럼 폼 잡는군요!)

 워낙에 작년 하반기는 론스타 관련해서 뉴스가 꽤나 시끄러웠습니다만, 뉴스에서 나오는 보도만으로는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지 않나, 싶습니다. 뉴스란 게 워낙에 단편적으로 새로 밝혀진 사안 하나하나에만 집중해서 보도하기 때문에, 어떤 구체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연속성있게 사건을 해설해주지 않기 때문이죠. 결국 무슨 사건이든 제대로 이해하자면 나름대로 한 번은 앞뒤 맥락을 짚고 넘어가야 뉴스도 이해가 간단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외환은행 매각 사태에서 핵심적인 사안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외환은행은 2003년 당시 외환카드와 현대자동차 등에서 발생한 부실 채권을 들고 있어서 경영이 위험한 상태였는데, 정부(구체적으로 재정경제부)는 해외 자본에 외환은행을 넘기는 방법으로 부실을 정리하려고 결정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복잡한 투자 구조를 거쳐 인수의 주체가 되는 론스타 4호 펀드는 사모펀드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것은 금융기관이 아닌 개인이나 기업이 은행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한 은행법 제15조 (동일인의 주식보유한도 등)와 외국인일 경우 금융업이나 금융 지주회사여야 한다는 시행령 5조, 두 경우 모두에 불법이라는 점입니다.

 금융기관의 소유 자격을 엄격히 제한하는 이유는 은행에는 기업 대출 등의 공공재적 성격이 있는데, 사적으로 소유가 가능할 경우 은행을 가진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간에 차별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사모펀드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자금을 모아서 운용하기 때문에 공모펀드에 비해서 규제도 덜하고 운용 방식도 자유롭기 때문에 특히 은행의 인수를 허가하기 어려운 것이죠. 더군다나 매각 대상이 공적 자금, 곧 세금을 투입해서 살려낸 은행이라면?

 그런데 은행법에는 은행이 BIS 자기 자본 비율 상으로 8% 이하인 부실 은행으로 지정되면 이런 소유 자격 제한 없이 은행을 인수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이 있습니다. 외환은행 매각 논의가 한창 진행중이던 2003년 7월, 외환은행에 대한 부정적인 실적 전망을 근거로 자기 자본 비율이 6.16%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팩스가 금융감독원에 도착하고, 금융감독원은 이 팩스를 근거로 은행법 상 예외 조항을 적용해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매입할 수 있도록 허가합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의환은행이 이 때 부실 은행이었던 것이 아니라, 부실 은행이 될 수도 있다는 추측에 근거해서 예외 조항을 적용했다는 점, 무엇보다 이 팩스를 작성한 것이 외환은행이 아니라 인수 주체인 론스타가 아니냐는 점입니다. 즉 은행 인수 주체의 예외 규정을 인수 주체의 주장만 듣고 매각 허가를 내 준게 아니냔 거죠.

 이것이 론스타 외환은행 매입 사건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이정환 기자가 책을 낼 당시에는 외환은행의 BIS 자기 자본 비율이 조작되었을 것이란 추측이 의혹에 불과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당시 재정경제부 국장 변양호[한국일보]씨가 이 비율을 조작해서 외환은행 매각 허가를 냈다는 검찰 조사 결과가 나와있습니다. 물론 차관도 아니고 일개 국장이 자산 90조가 넘는 은행의 매각을 허가할 수 있었을 리도 없고, 보다 더 깊이 관련한 실세가 있었으리라는 관측이 우세하지만,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책을 참고하시거나 투기자본감시센터 정종남 사무국장[민중의소리]의 인터뷰를 읽어보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 외환은행 되찾기 범국민운동본부[.] 홈페이지도 들러보실 만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외환은행 매각에 있어서 반드시 지적해야 할 부분은 외환은행 매각이 첫번째 문제 사례가 아니란 점입니다. 제 2장, 투기 자본의 악랄한 '기업 사냥' 실례들로 넘어가면 외환은행의 선례라고 할 만한 제일은행과 한미은행의 사례가 나옵니다. 제일은행의 경우에는 인수 주체였던 뉴브리지의 합법적이지만 비도덕적인 행태가 문제가 되었던 반면, 한미은행의 경우에는 론스타와 마찬가지로 사모 펀드이기 때문에 인수 자격이 없는 칼라일이 무려 아버지 부시의 로비에 힘입어 매각 허가가 떨어지는 과정이 인상적입니다.

 이정환 기자는 이 두 은행의 매각 협상 과정에서 형성된 인맥과 비리 구조가 그대로 외환은행 매각 협상에 반영되었으리라고 보고 있고, 그 중심에 장&김으로 결정화되는 이헌재 사단이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장&김은 이 세 은행의 매각 협상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고, 금융감독원이나 재정경재부에서 한 자리씩 했던 파워 엘리트들이 장&김으로, 다시 장&김에서 재경부나 금감위, 금감원으로 거쳐가는 일은 매우 일상적이라고 합니다.

 이정환 기자의 다른 기사[한겨레]를 보시면 좀 더 감이 오시지 않을까요? 아, 이헌재 부총리는 부동산 투기로 구설수[한겨레21]에 휘말린 적도 있고, 심지어 부동산 거품을 조장한 장본인[land.kimc.net]이라는 기사도 있습니다. 경제 정책의 핵심에 있는 사람이 이 모양인데도 론스타 수사 결과처럼 검찰이 손을 못 대는 형국이니, 우리 모두가 계속 관심을 갖고 추적해야 할 사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카드 사태로 대량 신용 불량을 양산하고, 공적 자금을 투입해서 살려낸 회사 자산이 해외로 흘러나가고, 온갖 대기업의 순이익이 절반 가량 배당으로 해외로 흘러나가고, 부동산 거품으로 온 나라가 미쳐 돌아가고, 결국엔 시중엔 돈이 안 풀려서 불경기가 계속되는 지금 이 모양을 만들어 놓은 게 IMF 시기부터 경제 정책을 주도했던 이헌재 사단[조선닷컴]이라니까요? 대통령이야 선거로 바꾼다지만 경제 관료들은 바뀌지도 않는단 말이죠. 2장과 3장의 투기 자본의 횡포에 분노하면서도 더더욱 암담한 것이 우리나라 경제 관료들이 우리나라 편이 아니라는 겁니다.

 모쪼록 많은 분들이 비단 이 책만이 아니라 여러 경로를 통해서 신자유주의 경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거대 자본이 아니라 우리 개개인이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사 카테고리인지 책 카테고리인지 애매한 결론이긴 한데, 좋든 싫든 살아야 한다면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굴러가는지 지켜보는 정도는 해야하지 않을까요.
by 매운맛나리 | 2007/01/21 16:25 | 웰빙 : 책 | 트랙백 | 핑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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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Starless☆Night :.. at 2009/10/25 00:23

... 투기 자본의 천국, 대한민국[매운맛나리]</a>  야성적 충동[매운맛나리]  이 책 은 나열한 이 모든 책을 통합하는 우월한 시야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미약하나마 기반 지식이 있어서 이해 할 수 있던 것일 수도 있겠다 싶지만, 그보다는 책이 다루는 주제가 매우 명확하게 우리 모두가 지금 당장 알고 싶어하는 것인 동시에 그 설명이 매우 명쾌하고 단순하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공부를 시작할 무렵에 누군가 이 책의 개정판 이전 판인 을 가이드해줬다면 ... more

Commented by melancolia at 2007/01/21 17:33
이 책 저도 곧 읽을 생각인데, 이정환 기자가 블로거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것 같아요.

요즘 드는 생각은 대통령보다 무서운 건 엘리트관료집단인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대통령은 바꿀 수 있어도 관료들은 바꿀수가 없지요. 최장집 교수도 책에서 그런 얘기를 했던것 같아요. 요즘 고시와 공무원 시험 열풍이 단순히 과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특권과 특혜를 향해 가는게 사람의 본성이니까요. 사람들도 다 알고있는 거겠죠.
Commented by 꿀벙이 at 2007/01/22 02:31
잘 읽었습니다. 멀리 있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는데 덕분에 정리가 좀 되네요.
Commented by 매운맛나리 at 2007/01/22 18:49
melancolia / 맞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연임제 개헌은 의미가 있는 얘긴데,
      경제 관료 입장에선 어차피 4년만 버티면 대통령 바뀌쟎아요?
      그런 면에서도 접근해야 되는데 여론이 너무 감정적인 감이 있죠.

꿀벙이 / 어이쿠,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지요.
    이런 화제에 관심이 많으시면 이정환 기자님 블로그를 방문해보시는 것도
    권해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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