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다시 보기
 세상사 카테고리에 오랜만에 씁니다. 원래 제가 세상사에 대해서 관심 그리 많이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뭔가 대단한 견해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닌지라 이것저것 잴 것 다 재고 나름 생각을 다듬어 내야 하는 세상사 카테고리 포스팅에 글을 쓴다는 것이 원체 손가락이 뻑뻑한 일이라 그런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게 된 것은 역시나 2007년 새해 들어 하루가 멀다하고 화제를 뿌리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때문입니다. 개헌 발언 이후로 올블로그에 관련 글이 너무나 많아져서 짜증난다는 한 블로거분의 발언[크로아상]이 역설적으로 올블로그에서 1위 글의 자리를 차지했었으니, 지지자든 반대자든 어떻든 그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주변에 모여들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지율이 상승중?

 사실 2007년 넘어오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야 10%대로 바닥을 벅벅 기고 있었으니,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주변에 모여드는 사람들 중에는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보다는 인상 찌푸리며 '이젠 좀 그만해라', '짬뽕난다'는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대부분이겠습니다만, 놀라운 것은 단지 이런 저런 말을 던지고 있는 것뿐임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2006년 10월 12.6%의 최저치에서 회복세를 보이며 17.9%까지 회복[브레이크뉴스]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도 노대통령의 발언에 시끌시끌했던 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올해 들어서 3주 연속 이어지고 있는 지지율 상승세는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요? 새해 들어와 10여일 지난 상태에서 이런 얘기를 해봐야 입증할 수 없는 추측에 불과하겠습니다만, 아마도 작년까지와는 달리, 올해부터 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노대통령이 하나하나 설명을 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음, 이렇게 말해선 의도가 전달되지 않으니 좀 더 정확히하자면, 올해부터는 당당히 드러내놓고 밝힐 수 있는 일들만 하겠다고 생각을 바꾸신게 아닌가 싶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당당하지 못한 일들

 '그럼 지금까지는 당당히 밝힐 수 없는 일들만 해왔냐?' 노무현 정권에서 있던 모든 일이 그랬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그래왔지 않았나~하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여럿 있습니다.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셨던 분들은 대부분 이 정권이 하는 일을 보고 있으면 개혁 정권인지 보수 정권인지 구분 못하겠다 싶은 일들을 여럿 겪어 지지를 철회하게 되지 않으셨을까 싶은데,

 차근차근 돌아보면 노무현 정부가 정말로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의 정부인지 의심할만했던 사건은 줄줄이 많았지요. 대표적인 사건만 꼽아봐도, 이라크 파병과 FTA 문제[매운맛나리] 튀어나옵니다. 또 평택 미군 기지 이전 시위 대응 문제나 비정규직 보호법 통과, 새만금 간척 사업[매운맛나리], 홍석현씨 주미대사 임명 등 대충 생각나는 것만 읊어도 여럿 나오네요. 마침 경향신문[.]의 신문 발전 기금 왜곡 보도에 '정말 친여매체는 조중동이다'라는 논지로 정리해둔 표가 있으니 한번 살펴보시면 일목요연할 겁니다.


노무현 정부와 조중동 주요 일간지의 정책 입장 비교
저작권 문제가 있을 것 같긴 합니다만,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무단 링크했습니다

 일단 이라크 파병과 평택 대추리 문제, FTA, 스크린쿼터 축소 등은 미국과 관련된 좀 더 델리케이트한 문제니 잠깐 제쳐뒀다가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면 사실 노무현 정부의 정책과 조중동, 혹은 한나라당의 정책이 크게 일치하지 않았던 적도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정책상 일치에도 커다란 예외가 있었죠. 바로 2004년 10월경 있었던 국가 보안법 폐지 논란과 행정수도이전특별법 위헌 판결[매운맛나리]입니다. 아마도 저는 이 시점이 노무현 정부가 우측으로 선회할 수 밖에 없던 분기점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이쯤가면 막 가자는 거지요?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설명드리기 위해서는 먼저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부터 2004년 10월 경까지의 정세를 가만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싶습니다. 우선 노무현 대통령의 유행어 중 하나인 '이쯤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발언이 나온 게 집권 극초반인 2003년 3월입니다. 이 문구의 재미있는 점은 이 문구가 실제 검사들과의 대화[국정브리핑]에서 사용된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조작되어 세간에 알려졌던 사례 중 유명한 케이스란 점입니다. (2003년 취임부터 1년 동안[오마이뉴스]에도 이라크 전쟁에 대한 지지, 한국-칠레 FTA, 새만금 간척 사업 및 방폐장 논의 진행, 비정규직 문제 가속화 등, 여럿 맘에 걸리는 정책들이 있었지만 일단 이 발언부터 다시 돌아보지요)
김영종 검사 : (전략) 대통령께서 검찰의 간섭을 전혀 안하신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저희로서는 참 반가운 소식이다. 또 그러시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렇게 정치인들이 계속 인사를 하다보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냥 두지를 않는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청탁을 한다. 우리 강장관께서 아주 개혁적인 인사라고 하시겠지만 차기 장관 다음 장관이 왔을 때 이 정권이 끝나고 다음 대통령 하에서의 다른 장관이 왔을 때 그것 담보 하겠나 못한다.
또 대통령께서는 대통령에 취임하시기 전에 부산 동부지청장에게 청탁전화를 한 적이 있다. 그것은 뇌물사건과 관련해서 잘 좀 처리해달라는 이야기였는데요, 신문보도에 의하면. 그때는 왜 검찰에 전화를 하셨나. 그것이 바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발언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대통령 :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죠? 우선 이리 되면 양보 없는 토론을 할 수 밖에 없다. 청탁전화 아니었다. 그 검사를 다시 입회시켜서 토론하자고 하면 또 한다. 잘 봐주라 못 봐주라 청탁전화 아니고 그 검사도 이 토론 보고 있지 않겠나. 우리 해운대 지구당에 당원이 사건이 계류돼 있는 모양인데 위원장이 나한테 억울하다고 자꾸 호소를 하니 혹시 못다 들은 얘기가 있는지 위원장이 가서 하는 얘기를 한번 들어주십시오. 그뿐이다. 그 정도이면 논쟁이 있었다. (후략)
 김각영 당시 검찰 총장 퇴진과 강금실 장관 임명에 검사들이 집단 반발 움직임을 보이자, 이번 인사가 검찰청 내의 인사를 투명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하기 위한 토론 중에 나왔던 발언입니다. 간단히, 투명한 인사를 위해 검찰청에 청탁 전화를 안 하겠다더니 취임 전에 검찰에게 전화 한 적 있지 않냐며 업무상 걸었던 전화 한통을 갖고 찌질하게 말꼬리를 잡자 노대통령이 한마디 반응했던 구절입니다.

 대화 내용 전문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상당히 긴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저 한 구절이 뜰 수 있었던 건 역시 조선일보의 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토론의 내용과 개혁 의도가 아니라 말투를, 그것도 전체 대화 중 극히 일부를 문제 삼아 노무현 대통령을 깎아 내리려는 작업은 이미 취임 초반부터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해왔던 것이죠. 2003년 5월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 벌써 노무현 대통령의 적절치 않은 발언 리스트[조선닷컴]가 십수개를 헤아립니다. 앞뒤 문맥을 찾아보면 다 납득할 수 있는 범위예요. 그렇습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던 건 한나라당이 아니라 조중동이었던 것이죠.


노무현 대통령의 좌절

 취임하자 마자 이런 저런 반발을 겪으며 무슨 일을 하든 반발이 없는 게 없는 상태로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을 넘기기도 전인 10월, 측근 비리 의혹으로 재신임 위기를 맞습니다. 재신임 국민투표 제안 발언이 위헌이냐 아니냐를 가리는 헌법소원은 다행스럽게도 5:4로 아슬아슬하게 각하[한겨레]되었지만, 얼마 지나지도 않은 2004년 3월 12월, 16대 국회가 찬성 193표, 반대 2표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을 통과[위키백과]시키면서 다시금 위기를 맞습니다.


당시 촛불 시위 장면
역시 동아닷컴에서 막 가져온,
저작권에 문제 있는 사진입니다;

 이때 탄핵소추안 전문[동아닷컴]을 보면 탄핵의 이유도 대통령이 경솔하다,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 극심한 행정부패가 있다 등등 써 있지만 17대 총선 역풍[위키백과]에서 보듯이 그런 지적은 헛소리였음을 국민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대통령 권한은 탄핵 통과로부터 5월 1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소추안 위헌 판결이 있을때까지 정지된 상태로, 노무현 대통령은 지금까지 짚어온 것처럼 취임 후 거의 1년 이상을 정말로 여기저기에 발목 잡히면서 시원스럽게 일 하지는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이 매번 손쉽게 발목 잡힐 구실을 던져준 것은 사실이고 그렇게 발목잡히지 않도록 노련해야 했다란 비판은 유효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항이 없었을 거라고 보는 것도 어느 정도 무리가 있습니다)

 어쨌든 대통령 권한을 다시 되찾고 나서 한달, 정부는 6월 15일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신행정수도 후보지 4곳을 발표[국정홍보처]하지만, 또다시 채 한달도 되지 않은 7월 12일 위헌 헌법 소원이 제출됩니다. 이어 9월 5일에는 MBC 시사매거진 2580 500회 특집 인터뷰[오마이뉴스]에서 '국가안보가 아니라 정권안보를 위해 이용되어온 독재시대의 낡은 유물은 칼집에 넣어서 박물관으로 보내는 것이 좋다'라는 발언을 기점으로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이 시작되고, 10월 21일에 신행정수도 특별법 위헌 판결이 날 때까지[action.or.kr] 2004년 하반기는 정쟁으로 날을 지새우고 있었죠.

 이 당시에 다수당이었던 한나라당은 '권고적 당론'으로 신행정수도 특별법을 16대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만, 기득권 세력이 뒤늦게 반발하자 부랴부랴 헌법 소원을 냈던 것이죠. 이런 의미에서 한나라당 역시 참 무능하다고 할 수 밖에 없는데, 결국 노무현 대통령의 상대는 한나라당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기득권 세력이고 이들의 목소리는 신행정수도 이전을 천도로 묘사한 이 시기의 조중동 기사를 통해 잘 반영되고 있었습니다.

 당시 기사를 보면 신행정수도 이전이 천도라고 선정적으로 묘사하며 서울시의 집값 폭락 등을 우려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처럼 수도권 아파트값만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황에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한 사람들, 뭔가 해명 좀 해야 하지 않나요? 당시 보도 분위기를 전할 수 있는 기사[인터넷한겨레] 하나 링크 해둡니다. 인터넷 한겨레의 기사라 중립적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딱히 더 중립적인 자료가 있을 수 없는 사안이기도 하죠.


기득권 세력과의 타협?

 노무현 대통령이 그래서 이 시기를 슬기롭게 넘겼다곤 할 수 없다, 추진할 수 있는 다른 좋은 방법을 찾았거나 이 때도 말이 많았던 민생에 집중해야 했을 것이다 등등 여러가지 얘기할 수 있지만 지나간 일에 가정법을 써봐야 허무할 뿐이죠. 게다가 대표적이었던 공약인 행정수도 이전을 정부 출범 1년이나 지나고 지지율도 높을 때 아니고 언제 할 수 있었을까요? 결국 우리가 여기서 배워야 하는 건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란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고, 노무현 정부 이상으로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돌아보건데 노무현 대통령은 이 시기쯤, 기득권 세력이 이렇게 반발한다면 도저히 개혁 과제를 수행할 수 없고, 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일정 정도 기득권 세력과 타협해야겠다하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같습니다'란 애매한 표현을 쓰고 있는데, 워낙 조심스럽게 써야 하는 내용이지만 이 얘기를 입증하는 증거가 있는 것 아니고 '어디까지나 그럴법하지 않나? 아님 말고' 류의 조선일보식 추측이기 때문인데,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점 미리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행정수도이전과 국가보안법 논란으로 뜨거웠던 2004년이 가기도 전인 12월 16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을 주미 대사로 내정하고, 해가 넘어가자마자 도덕성 논란[인터넷한겨레]으로 자진 사퇴했던 이기준 서울대 전 총장을 교육부총리로 임명했던 것이 그런 타협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왜 조선이 아니라 중앙이었을까'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한국의 기득권 세력이라면 역시 삼성, 그런 고로 중앙일보 배후의 삼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2005년 하반기를 달궜던 이상호 X파일 사건[위키백과]과 관련하여 홍석현이 주미 대사에서 물러나고 이건희 회장이 배후로 주목받는 상황에서 굳이 노무현 대통령이 대연정 제안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대연정 제안으로 인해서 X 파일 수사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파란뉴스], 대연정 제안의 최대 수혜자는 궁지에 몰렸던 이건희 아니냐'란 의혹이 제기될 만큼 대연정 제안의 진정성이 의심받았었죠.

 삼성 감싸주기에 한나라당과 대연정이라니! 많은 분들이 이 시기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크게 실망하셨으리라고 봅니다. 저 역시 많이 실망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구나! 지지도 그만둬야겠다', 이렇게 생각했었지요. 대연정과 그 이후로도 몇 번의 러브콜에 한나라당이 무조건 모르쇠 반응으로 일관했고, 결과적으로 낭비였음은 다들 잘 아시는 바일 겁니다. 어떻든 2003년, 2004년 동안 참여정부가 기득권의 거세고 집요한 반발로 아무 일도 못했다고 하면, 출범 이후의 추진력을 잃고 기득권 세력과 타협 의혹으로 좌파인지 우파인지 알 수 없다는 의심을 받기 시작한데다, 민생과 경제 문제가 가시적인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는 2005년부터 노무현 정부의 본격적인 고난이 시작됩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에 이르기까지

 딴지걸리느라 정신없던 2003년과 2004년에 비해서, 2005년과 2006년엔 노무현 대통령이 뭘 했나 생각해보면 뭔가 대단한 게 떠오르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사실 돌아보면 가깝게는 북한 핵 위기가 있어요. 2005년 2월 10일, 북한이 핵보유를 선언하고, 9월 19일 제 4차 6자회담에서 공동 성명을 채택한 이후, 잘 아시는 대로 지금 이때까지 결론이 나지 않은 위태로운 상태지요. 2005년 8월에 들어오면 부동산 대책의 신뢰도가 추락하기 시작한 원점이라고 할 수 있는 8.31 대책이 나옵니다.

 부동산 대책이 참담하게 실패한 것이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 같은데,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저는 참여정부 고위 공직자가 강남에 아파트가 있으니 대책이 제대로 설 수가 없다, 참여정부는 경제 정책을 세우는 데 무능력하다 등등, 이런 원인 이전에 부동산 문제와 행정수도 이전 논란의 본질이 같기 때문에 부동산 대책의 실패는 예견된 수순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거나 행정수도 이전이나 문제의 난이도가 그리 다르지 않은데, 지지율 상한가에서도 힘들었던 걸 이제와서 해결보긴 쉽지 않을 테니 그런 점을 감안해서 봐야한단 얘기죠. 조중동 지면 상의 공급 확대론[국정브리핑]종부세 납세 거부 운동[파란미디어]과 동전의 양면 관계를 이루며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행정수도 이전 논란때보다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연정 제안에 이어지는 보수 편향된 움직임은 2005년 12월 새만금 간척 사업 재개로 시작해서, 실속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는 걸 급하게 추진한다고 말이 많은 한미 FTA가 2월 3일에 정식 추진을 발표합니다. 또 2006년 3월 23일 정부 여당간 당정 협의회에서 출자총액제한 제도 폐지를 검토하더니 장고끝에 폐지했고, 이어 11월 30일 비정규직 보호법 통과 등으로 이어집니다. 전시 작통권 환수와 평택 미군 기지 이전 논란도 빼놓을 수 없네요. (미군 기지 이전에 대해서는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의 일부기 때문에 작통권 환수, 혹은 대북 협상권과 교환한 게 아닐까 추측하는 잡문[매운맛나리]이 있습니다)

 슬쩍만 돌아봐도 2005년과 2006년의 노무현 대통령은 보수 진영한테는 부동산 대책과 북핵 문제 대응, 작통권 환수로, 진보 진영한테는 FTA, 미군 기지 이전 반대, 비정규직 보호법, 출총제 폐지, 일반 시민들에겐 경제 문제와 국민 연금 개정 등 모든 문제로 두드려 맞는 동네 북 신세가 됩니다. 그야말로 아군이 하나도 없는 노무현 정부 수난의 시기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고, 노무현이 뭘 해도 욕먹는단 얘기가 과장이 아닌 것이죠. 급기야 2006년 중반 들어서는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위키백과], '…할 때 노무현은 뭘했나?'라는 유행어가 등장하기에 이릅니다.


잘한 일은 하나도 없나?

 '한국사의 어느 시기가 어렵지 않은 적이 있냐'라고 물으면 물론 대답하기 곤란합니다만, 이렇게 다이제스트 식으로 놓고 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참 어려운 시기를 보냈구나', '노무현 태통령이 무엇을, 왜 못했겠구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무리 나쁘게 봐도 노무현 대통령이 요령이 없어서 기득권 세력을 구슬르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 사회를 더 뒤로 보낸 건 없습니다. 가장 큰 실정으로 지적받는 경제를 볼까요? 경제가 안 좋다, 취직이 안 된다하는데, 한번만 다시 생각해 봅시다. 기업들이 주주 배당을 늘리고 인수 합병을 방어하느라 현금을 쌓아두고 투자를 줄이며 고용을 줄이는 저성장 세계화 추세가 대통령이 사주라도 해서 그렇단 말인가요?

 물론 론스타와 비정규직 보호법, 이 두 가지 화두만 갖고도 참여정부의 경제적 실정에 대해서 충분히 길게 논의할 수 있을 거고, 서민 경제에 대한 관심 부족, 세계화 경제 시스템에 대한 이해 부족, 그로 인해 양극화가 가속되고 한국 사회가 뒤쳐진 위기는 책임을 물어 마땅합니다. 하지만 제겐 부동산 거품과 비정규직 양산의 책임을 반 이상 가져가야 할 조중동, 재벌 등 기득권 세력의 정당, 사사건건 반대와 무위(無爲)를 일삼는 정당이 정권을 잡았더라면, 혹은 앞으로 잡는다면 경제, 특히 서민 경제가 더 나을 거라고 상상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이라크 파병? '한미 동맹 관계를 유지하려면 보내야 할 것이고, 그렇다고 이 전쟁엔 명분이 없으니 고민하다 3000명 비전투원을 보냈다.' 이상주의자시라면 납득하기 힘드실 것이고 비판도 해야겠지만 그러면 파병을 주장하는 사람들과도 좀 싸워주시든가요. FTA에 전시 작전권 환수m 주한 미군 재배치? 힘도 없는데 미국 안 삐지게 하면서 동북 공정하는 중국 견제도 하자니 힘 좀 들지 않겠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 사회를 뒤로 보낸 게 없다는 얘기는, 말하자면 참여정부가 일으킨 것처럼 보이는 국론 분열과 기타 혼란상은 한국 사회를 앞으로 가게 만드는 과정에서 암초에 걸린 것과 같고, 그 암초는 어느 정권이든 서울-지방 격차 문제, 국가 보안법, 세계화 시대에 적응 등 발전을 위해서 지나가려면 드러날 것이었단 얘기죠. 왜 이렇게이렇게 피할 수 있던 암초에 걸렸냐고 합리적으로 '비판'하는 건 좋지만 암초가 있다는 사실을 선장 탓을 해서 쓰겠습니까?

 반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잘한 일들은 확실히 있습니다. 보스 정치 타파, 검찰 개혁, 국정원 독립, 사학법 제정, 집단 소송제, 국민연금 개혁, 호주제 폐지, 국가균형발전법, 과거사 기본법, 기득권 언론의 문제점 이슈화, 북핵 위기 관리 등 의외로 꽤 많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잘한 부분에 대해서 다시 평가할 필요가 있다 내용의 '대통령만 욕할 일이 아닙니다'[한토마]라는 글이 이런 취지를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마치며

 제 경우는 사실 정치에 그닥 관심 없는데다가 노무현 대통령 지지 안 한다고 말한 지 꽤 오래되었는데도, 대통령이 막말한다며 시끄러웠던 2006년 12월 21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연설 전문[맑은가난]을 읽으면서 이젠 더 이상 기득권 세력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듯한 말투에서 좀 마음이 움직이다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혀 득될 게 없는 중임제 개헌 제안 쯤 오고나니 지금까지 진행했던 보수적인 정책에 대해서도 왜 그랬는지 돌아보고 싶은 기분이 들더군요. 한나라당의 임제 개헌 반대엔 전혀 명분이 없다는 거야 잘들 아시는 사실[제프리]일테니 생략하구요,

 그러고 나서 가만 돌이켜보니 '어, 곰곰히 따져보니 그렇게까지 많이 잘못한 건 없구나' 싶은 것도 많고, 잃을 것도 없는 남은 1년, 중임제 개헌처럼 반대할 명분이 없는 사안으로 지지율을 회복하고 될 수 있는 것들은 진행할 것 같다, 이미 다 포기한 상태였는데 이제부터 뭐라도 얻는다면 이득이 되지 않겠나, 하는 기대랄까, 무엇보다 저 스스로도 '이게 다 노무현 탓이다'라는 말에 어느새 이렇게나 깊이 세뇌되었구나!라고 깨닫게되어 깜짝 놀라버렸습니다. 그러면서 노무현 대통령은 거의 다 포기한 상황이었는데, 앞으로도 개헌처럼 뭐든 득이 되면 득이 됐지 실이 될 일은 안 할테니 한 번 지켜볼까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여담이지만 차례차례 이제 타협은 안 하겠다, 국민에게 손해될 일은 안 하겠다, 단계적으로 이런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이 참 노련합니다)

 두리뭉실하게 '노무현 대통령이 못했다', '모든게 다 노무현 탓이다'라고 생각해버리면 노무현 대통령보다 나은 사람을 뽑기 어려울 겁니다. 최소한도 노무현 대통령이 잘한 부분과 못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체크하고, 누가 잘한 건 그대로 잘 하면서 못한 부분을 극복하고 더 잘할 수 있을 지 고민해봐야 얘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겪었던 좌절은 결국 한국 사회의 좌절이고, 싫든 좋든 진보 세력이 조만간 다시 부딪칠 문제기 때문이지요. 임기가 1년 남은 지금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한 적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차기 대권 주자들에 대해서도 공부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찌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는데, 재미있게 읽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두서없는 장문의 글 읽어주신 것, 매우 감사드립니다. (__)
by 매운맛나리 | 2007/01/14 04:56 | 세상사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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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melancolia at 2007/01/15 03:58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이런 차분한 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발견하게되었네요.
Commented by 꿀벙이 at 2007/01/15 05:04
좋네요. 잘 봤습니다. 매콤하네요. ;)
Commented by 매운맛나리 at 2007/01/15 16:14
mealncolia / 반갑습니다. (__)
      끝까지 읽어주신 것만해도 감사한데 잘 읽으셨다니 두 배로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꿀벙이 / 반갑습니다. (__)
    하하하 매콤하다라, 맘에 드는 커멘트네요.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Siyo at 2007/01/17 23:55
아무래도 음식 리뷰보다 이쪽이 좋네.
Commented by 매운맛나리 at 2007/01/19 13:01
정치 사회 글만 썼다간 아무도 안 와?!
Commented by Freely at 2007/02/08 19:30
와후 유쾌상쾌?

음 그렇지만 역시 노통은 도통 알수없는 사람인거 같습니다.
Commented by 매운맛나리 at 2007/02/09 20:56
반갑습니다 (__)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것 같아보이면서도
정작 노림수가 뭔지는 모르겠는 것이
도통 알 수 없는 사람인 건 맞는 얘긴 것 같아요.
Commented by 까나리 at 2007/03/09 10:36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아 아쉬울 따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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