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곳에 올렸던 글인데, 그 사이 일로 읽은 것들 말고는 마땅히 따로 읽은 책도 없고 해서 다시 옮겨옵니다. 이 글을 쓴 지도 꽤 오래되었네요.책은 그린스펀의 신자유주의적인 경제 정책이 미국 증시에 거품을 일으켜 결국 2000년 대규모 증시 붕괴를 불러왔고, 쌍둥이 적자가 엄청난 규모로 커지도록 만들었으며, 제조업 기반을 무너뜨리고 미국 국민의 생활 수준을 낮춘 책임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번역이 거지같은 것만 참을 수 있으면 책의 내용은 쉽고 이해하기 좋은 편입니다. 논의 자체는 세계 경제의 그림자, 미국[매운맛나리] 같은 책에서 이미 접했던 내용이라 그렇게 놀라운 내용은 아니었지만 두 가지 포인트가 좋았습니다. 하나는 미국인의 관점으로 미국 경제 시스템의 문제점을 분석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것이 단순이 도덕적으로만 타당한 입장이 아니라 경제 성장 측면에서도 훨씬 효율적이라고 논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책에서는 그린스펀의 주장 중 몇 가지를 들어 반박하고 있는데, 임금 인상 요구나 최저 임금제는 실업률을 높인다[남윤호]는 주장이나 부유층에 대한 소득세 감면은 소비와 투자를 활성화하여 경제를 살린다[중앙일보]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주장은 우리나라 신문이나 뉴스에도 여러 번 언급되어 굉장히 친숙한 것인데, 따지고보면 그린스펀이 전 세계에 신자유주의를 보급하는 수장 역할을 했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무엇보다 이런 논증의 전개 과정이 쉽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입니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제가 실업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논증은 너무나 간단해서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외부 영향을 배제한 상태에서 수요와 공급이 안정되어 있다면 다음과 같은 공식이 성립합니다. 수요 = 소비 + 투자 = 공급 이 공식에서 소비는 바로 급여를 의미합니다. 물론 위와 같은 관계가 성립하려면 노동자가 저축하지 않고 급여를 모두 소비에 사용한다는 가정이 있어야 하는데, 미국의 경우 저축률이 2%를 밑돌기 때문에 다분히 현실적인 가정입니다. 여기서 단위 노동 당 생산성이 증가했다고 치면 공급이 늘어납니다. 공급이 두 배 늘고 급여가 두 배 늘면 경제가 두 배 성장한 것이고, 인플레이션이나 실업 등 기타 불행한 일들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제 생산성 증가로 공급은 두 배 늘어났지만 급여는 두 배 늘어나지 않았다고 가정합시다. 그러면 등식이 깨져 부등식이 됩니다. 수요 = 소비 + 투자 = 급여 + 투자 < 공급 공급이 많아졌다는 얘기는 재고가 쌓인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투자를 늘려서 균형을 맞추면 모두 행복해지겠지만, 안타깝게도 재고가 쌓이는 판에 투자를 늘릴 기업가는 없습니다. 그린스펀은 이 난감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부채를 공식에 추가합니다. 수요 = 소비 + 투자 + 부채 = 공급 무슨 말이냐 하면 급여가 오르지 않아 팔리지 않은 재고분만큼 소비를 더 하도록 일반 가정에서 대출을 받아 물건을 사도록 만들었단 얘기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그린스펀은 연방 기준 금리를 낮춰 소매 금융의 이자율을 낮췄습니다. 이자율을 낮추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간단히 요약하자면 주식 시장이 저축보다 매력적이 되어 자금이 주식 시장으로 몰리게 됩니다. 급여가 물가 상승률(=경제 성장폭)에 따라 올라가지 않아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빚을 내서 주식 시장에 참여하게 됩니다. 주식 시장에 많은 돈이 유입되면 증시가 오르고, 증시가 올라 거품이 끼기 시작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주식이 더 오를 것을 기대하고 주식을 사게 됩니다. 그러나 명백히 이런 방식의 경제 성장이 무한정 계속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채무가 어느 수준이 되면 은행은 채무자의 지불 능력을 우려하여 대출을 중단하게 되고, 따라서 소비도 멈추고 증권 시장에 유입되는 자금도 스톱됩니다. 실제로 거품처럼 치솟았던 증시는 2000년을 기점으로 무너져 나스닥 종합 지수는 2/3가 하락했습니다. 급여는 물가만큼 오르지 않았지만 소비 수준을 물가 상승에 맞춰야 했던 미국인 가정은 평균적으로 노동 시간이 증가했고, 맞벌이 가정의 수가 늘었으며, 더 많은 빚을 지는 경향이 뚜렷해졌습니다. 굉장히 단순한 논증이라 이걸 믿어도 될 지 고민될 정도인데, 책은 임금 상승이 생산성 증가를 따라잡지 못하는 경우, 즉 기업이 번 만큼 임금을 인상하지 않는 경우에 실업률이 높아지고 경제 불황이 온다는 증거를 여럿 제시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1920년대에 2000년과 비슷한 주가 붕괴가 있었는데, 해당 기간에는 실질 임금이 생산성 증가를 따라잡지 못했다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임금이 꾸준히 올랐던 1960년대 부근엔 경제도 호황을 누리고 실업률도 낮았습니다. 일본의 경우 역시 1960년~1975년 기간 동안 264%의 생산성 증가에 발맞춰 임금도 275% 증가하며 순조롭게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1975년부터 노조가 약해지면서 임금 상승폭이 둔화되었고, 그 결과 주식과 부동산 투기가 일상화되었고 버블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반면 노조가 강력해서 임금이 꾸준히 상승했던 독일의 경우 1960년부터 1980년까지 실업률도 1%에 달하는 등 아주 좋은 경제 지표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물론 반대로 생각해서 '기업이 경기가 좋아야만 임금도 올릴 수가 있지 않겠냐' 싶기도 하지만 이래서는 꼬리 잡기가 끝나질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경기가 좋다는 것은 기업이 생산해 내는 물건이 잘 팔리는 상태가 아니라 개개인 경제 주체가 잘 소비하는 상태를 의미한다는 관점의 변화입니다. 이 논증은 기업에 자금이 남아돌지만 실업과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상식선에서 생각해봐도 보통 사람들에게 쓸 돈이 없는데 경기가 활성화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문제는 최저 임금을 올리기 이전에 대부분의 기업이 공장을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해버린다는 점입니다. 임금은 공장이 있는 곳에서 지급되니 본국에는 물건을 살 돈이 풀리질 않습니다. 그나마 임금도 국내 수준보다 싸기 때문에 임금과 판매 대금의 차익은 그대로 기업에 남습니다. 즉 노동이 아웃소싱되는 세계화 시대에는 생산한 가치보다 적은 돈이 급여로 지급되고, 결과적으로 단순 급여 생활자는 점점 더 생활이 어려워진다는 결론입니다. 여기서 간단하게 소개한 내용 외에도 그린스펀 개인의 경제학적 지식이나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나 미국의 무역 수지 구조에 대한 논의도 있으니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특히 외국에게 자유 무역을 시켜서 미국의 국제 수지를 흑자화시켜 경제를 살리자라는 얘기도 있는데, 미국과의 FTA를 초고속으로 진행하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듣기에는 섬뜩한 얘기군요.
|
포토로그
카테고리
이전블로그
최근 등록된 덧글
최근 등록된 트랙백
메뉴릿
이글루링크
없음
▒ 제닉스의 사고뭉치 ▒ 뭉시리의 집.. Mii Plluto's cheerful Geh.. 일본에 먹으러가자. Sequoia WebLog the world is naked. 태양의 곁자리 하얀까마귀의 테스트베드.. v e r . b e t a 주식회사 이디스 sphere burster ; whit.. gundown의 食遊記 LOVEstation AD/DA -.. I Hate You 이은석 항해일지 soup_box[물고기.. 히엔 돈 카펠리아노 산벽달회 나를 숨기는 것은 얼마나.. ozzyz review 허지웅.. ▷단열 곤충 채집통◁ sIMAGINATIONs ZELONGLOO3OTH Groove Tube P.C하지 않은 ㅎㅅㅎ 25세 빛의 탑, 어둠의 던전 紙月 오리대마왕님 집 Field's Nest Astralium Report rehn's トイレ kyungjae.net 사회디자인연구소 Blameless life.... 龍孤視遠天爲時振威名 카즈군의 Holyland ROUGH SKETCH ▣Lac pourpre▣ Oxymoronic World 우리는 꽁패밀리!!!! 한글날의 부활. 쌀밥게임 대왕 gimmesilver's blog 무디의 무책임한 세상 Discoveries Noenoe Sweet & Slow ZelDaQ 빈틈씨의 먹자골목 You're on the blitzkre.. 매거진 프라우드 MAGAZ.. CASSIS PEACH 랩좀비. 랩은 못하지만 .. rootrain '-')/ 毎日がスペシャル 마나네 타이요(taiyo) 쑥의 pro.TOT.yping Relish the Process 정열의 아자베 둥글게 君という光 rose 구찮아... Stay hungry, stay fo.. 깔짝깔짝 생활 Dream of Time 얼어붙은 수돗물 파이프 낭만과 해학으로 함께 가.. 쳐키의 드라이빙 Ohyecloudy's S3 Counter-revolutionar.. 도로시를 부탁해 ★ Stella et Fossilis SAGA 완성의 그 날 M과 M사이 Incarnation 카로 택시지 Li ucciderò. 망치와 모루 마케터의 블로그스타 - 200.. ANTHOLOGY 2731A 공돌이 옵빠 K 송아지 스팀밀크 백기사님의 이글루 grand blue 따뜻하고 한가로운 블로그 하드보일드하게 사는 거야! 야재나라 야햑묜 이글루 바깥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