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윙걸즈
영화 감상 포스팅은 뭐랄까 어느 블로그나 가도 다 하는 거다보니 특별히 내가 그보다 더 잘 할 자신이 없어서 굳이 할 필요는 없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곰곰히 다시 생각해보니 그리 애써서 잘 쓸 필요도 없고, 자꾸 이런 거 안 해 버릇하다보니 사람이 점점 사포처럼 까칠해지는 것 같아서 좀 적어 버릇해야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연속으로 먹는 얘기만 하는 것 같아서 콤보 끊기도 겸해서. (이쪽이 본심이겠지)

스윙걸즈는 얼마 전에 봤던 카사노바처럼 유쾌한 영화다. 여러가지 다양한 사건들은 우연히 해결되거나 은근슬쩍 무마된다. 옛날엔 이런 영화를 보면 '말도 안 된다!'라고 화를 내곤 했는데 지금은 굉장히 즐겁게 볼 수 있게 된 걸 보면, 뭐랄까, 조금은 너그러워진 걸까? (모님은 '나이들어서 그래!'라고 했지만. 흥! orz)

원작이 만화가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사건이 해결되는 방식은 발랄하고 비현실적이지만, 유쾌한 장면을 이어가는 것과 학생들의 심리 묘사에는 치밀하게 공을 들이고 있다. 식중독으로 실려가는 야요이 선생이 '하와이…'를 중얼거리는 장면부터 시작해서 토모코가 집안 집기를 팔아 악기를 마련하는 장면, 마치 수맥을 찾듯 토모코가 색소폰을 불며 타쿠오의 피아노 연주 소리를 찾아가는 장면, <웰컴투동막골>에서 표절해 간(?) 멧돼지 추격씬 등 끊이지 않는 유쾌한 장면은 대미를 이루는 공연 장면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수위를 높여가며 말도 안 되는 설정을 잊어버리게 도와준다. 토모코와 다른 아이들이 카오리의 연주(?)를 들은 후에 벌이는 연습 경쟁과 야구 경기 응원 연주 기회를 뺏긴 뒤에 분해하며 우는 장면, 연주회에 참가하지 못하게 된 사실을 차마 알리지 못하는 토모코의 모습 등, 고등학생다운 심리를 묘사하는 장면들도 소소하지만 세심하다. 말도 안되는 사건 전개에도 불구하고 이런 섬세함에 힘입어 영화는 서투르지만 자신의 힘으로 뭔가를 해내는 감동에 이입하는 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이끌어 간다. (물론 영화 막판엔 거짓말처럼 전혀 서투르지 않지만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심상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주인공이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이 아니었다면 영화의 매력이 반감되었을 것이라는 점이 쪼오금 걸리긴 하지만, 시종일관 괴롭고 지리한 현실을 떠올릴 만한 모든 것으로부터 보는 사람을 능청스럽게 감싸주는 것이 매력적이고 유쾌한 영화다. 이런 식으로 마음을 어루만지는 영화를 보고 현실로 돌아오면 마음 한 켠이 아릿해지기도 하는데, 그런 부작용(?) 없이 즐겁기만 한 영화도 오랜만인 듯.
by 매운맛나리 | 2006/03/25 00:18 | 웰빙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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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뭉실이 at 2006/03/25 19:41
먹는 이야기만으로도 사포처럼 까칠해지진 않습니다 ;) 그나저나 비유가 맘에 드네요..사포처럼 까칠..ㅋㅋ
Commented by 쌀밥 at 2006/03/26 01:57
저는 스윙걸즈가 개봉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다른 일본 영화들 처럼 2~3일 개봉하고 접어버리면 안되는데... 하는 걱정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왜 걱정을 하는 건지는...; 아리송;; )
저는 부작용이 3일쯤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Commented by 매운맛나리 at 2006/03/26 18:14
뭉실이 / 까칠해지진 않지만 뭐랄까 단순해져버리는 또 다른 문제가 orz
쌀밥 / 에헥 너무 감정이입해버리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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