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강의는 먼저 아주 전통적이고 미학적인 쪽에서 출발해서, 르네상스 이래 유럽 회화에서 근대적 시지각이 조직되는 원리를 읽어낸다. 이는 광학적 미디어의 '수공업적 단계'로 통하지만, 그마저도 수학적 계산 같은 과학-기술적 토대가 없었다면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p37
영화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어떤 '환상과 정치의 연합'에 부응해서 발명됐으며, 따라서 그 연합을 통해서만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TV에 관해서는 그 반대의 사실이 참이다. 내가 아는 한, TV는 실제로 발명되기 전까지 한 번도 진지하게 누군가의 꿈이 되었던 적이 없다. 이는 분석을 요하는 대목이다, p41
19세기 이후의 발레, 오페라, 연극, 더 나아가 바로크 시대의 혁신적인 '핍 박스형 극장'에서 향후 도래할 영화의 기본 요소들이 자연 발생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은 거의 조명받지 못했다, p42
극영화는 10년 내에 셀룰로이드 필름 대신 표준화된 광전자공학 방식, 즉 컴퓨터라는 이름의 보편 디지털 신호처리 방식으로 귀결될 확률이 아주 높다. 확실히 밝혀 두건대, 내 목표는 현존하는 최초의 무성영화나 RTL 방송국의 최신 TV 프로그램이 아니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된 광학적 세계로 강의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다, p46
전자 회로의 흐름도를 읽고 쓰는 능력, 짧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쓰고 이해하는 능력, 컴퓨터 스크린 상의 그래픽 디스플레이를 읽고 직접 프로그래밍하는 능력. 이는 실제로 1990년대에 산업계가 고등학교 졸업생에게, 그러니까 미국 정부 자체에 제시한 요구 사항이다, p49
마치 군사적 에스컬레이션 전략 모델처럼 전개되는 기술혁신은 어쩌면 기술들이 서로 말 걸고 답하는 과정에 불과하지 않을까? 기술은 인간의 개별적, 집단적 신체와 전혀 무관하게 발전하기 때문에 감각과 기관 일반에 압도적인 충격을 가하는 것이 아닐까?, p52
민간에서 사적으로 사용되는 비디오 녹화기가 바로 그런 감시 장비에서 도출되었음을 입증할 수 있다면, 매스미디어와 하이테크의 경계선이 얼마나 인공적이며 그런 구별 짓기가 두 영역의 연관성을 분석하는 데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 명백해질 것이다, p55
'인간은 미디어가 모델과 은유를 제공하기 전까지 자신의 감각에 관해 알지 못한다.', p58
기술적 미디어는 전략적으로 인간의 감각을 능가하도록 개발됐기 때문에 소위 인간의 모델이 된다, p60
인간과 기술적 미디어의 관계가 변증법적 관계가 아니라 배제하고 적대하는 관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기술사가 비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과 전혀 무관한 것임을 확인시켜 준다, p61
여기서 내가 표준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그런 규제의 공모성, 임의성, 우발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p61
회화는 겉보기에는 리얼리즘적인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규약 즉 관습이 명백하게 작용하는 음악이나 문학 같은 예술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그리스적 개념을 따르는 수공예로서의 전통적 예술은 환영이나 허구를 이룩했을 뿐 기술적 미디어 같은 시뮬라시옹을 창출하지 못했다. 전반적으로 예쑬적 양식이나 규악이라는 것들은 기술적 표준과 전혀 상반된 분리의 질서 아래 놓였다, p63
실재계는 기호의 조합을 통한 조직화나 광학적 시지각 과정에서 누락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에서 실재계는 오로지 기술적 미디어를 통해서만 저장하고 처리할 수 있다, p66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몽타주와 커트의 기술, 즉 발터 벤야민 이후 기술적 미디어 특유의 미학으로 간주되는 모든 것을 검토해야 한다, p66
"사진이 알려진 다음부터", 어떤 새롭고 "까다로운 요구가 이미지"에 가해지고 있다. 이제 이미지는 다른 모든 재현적 예술처럼 "대상과 닮아야 할 뿐만 아니라, 대상 자체에 의해 기계적으로 산출된 '소위 대상 자체의 산물'이 됨으로써 그 닮음을 보증해야 한다. 그러니까, 현실에서 빛을 받은 대상이 기계적으로 제 이미지를 감광판에 각인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p67
한편에 [상상계의] 모든 형태들, 다른 한편에 [상징계의] 모든 문화적 규약들이 있다면, 실재계의 조작이란 대체 무엇이 될 수 있을지 희망적으로 시사한다. 그리고 라캉의 말대로 신체가 실재계에 속한다면, 광학적 미디어와 신체에 관한 내 짧은 강의도 이제 목적지에 도착한 셈이다, p67
라캉이 말하는 상징계는 의미론, 의미, 형태성 등 모든 인식 가능성이 제거된 순수 구문법이므로, 결국은 통신 기술 쪽의 정보 개념으로 수렴할 수 있다, p67
…근대적 '정보'를 함축한다. 그것은 예술적 복제에서 불가피하게 여겨지는 정확성의 손실을 감수하지 않고도 데이터를 비물질 상태로 저장, 전송, 처리할 가능성이다. 이 사례에서 요점은 오직 화학적인 순수 정보가 화학적인 순수 파괴와 연관된다는 것이다. (…) 다시 말해서, 정보 개념은 그 자체로 군사적, 전략적 요소가 있다. 미디어 기술의 시대가 기술적 전쟁의 시대이기도 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p68
아인슈타인의 상수 c로 표시되는 광파 또는 광자의 속도는 다른 무엇으로도 능가할 수 없는 절대 속도다. 따라서 더 빠른 정보에 대한 전략적 요구, 즉 아군의 지휘 통제, 적군의 감시 통제, 특히 적군의 군사 행동에 대한 가능한 빠른 지휘 통제의 요구는 지난 백여 년간 광학적 미디어의 폭발적 성장을 촉진한 결정적 요인이었다. 이것이 비릴리오의 두 번째 논지다, p69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25년간 TV 방송으로 폭격을 퍼부은 결과였다, p70
하지만 기술적 커뮤니케이션은 의미나 맥락에 대해 독립적이라는 바로 그 이유로, 맥락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일상 언어로부터 해방되어 전 지구적 승리를 구가할 수 있었다, p72
두 번째 해법은 메시지를 전송하기 전에 그것을 같은 유형의 분절된 요소들로 해체해서, 원칙적으로 물리적 제한이 따를 수 밖에 없는 채널 용량에 끼워 맞추는 것이다, p73
세 번째로 채널은 전송매체라면 공간을 가로질러 연결하고 저장매체라면 시간을 가로질러 연결하는 장치다, p73
…우리가 처한 상황을 시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그렇지만 TV 재방송에 흥분하는 사람은 없다. 섀넌이 수학적으로 정보량을 계측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든 가장 큰 이유는, (…) 이제 새로움은 모든 코드에 불가피하게 함축되는 반복적 부분에서 분리되어 따로 측량돼야만 했다, p75
성경과 코란이 근동과 유럽 지역에서 각종 성상과 우상에 맞서 승리를 구가할 수 있었던 까닭은 오로지 그것이 이동 가능한 성소였기 때문이다, p78
새로 개발된 미디어는 맨 먼저 문학의 독점과 싸워 이겨야 했으므로, 나는 광학적 미디어의 전사를 문학과의 지속적 관계 속에서 조망할 것이다, p78
움직이는 이미지의 문제는 그 자체가 이미지 전송의 문제다. 그런 움직임을 저장하려면 미디어 기술이 필요하기도 하거니와, 전송 자체가 일종의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 모든 신화는 그림자와 거울에 기초하며 그 핵심에는 이미지 전송의 문제가 있다, p79
투시도법은 모든 그림에 선행해서 다소 명시적인 기하학적 질서를 부과했고, 덕분에 회화는 환영 창출의 기술로 변모했다, p80
중요한 것은, 고대의 능동적 시선 이론 때문에 자연이 눈 속에서 제 모습을 스스로 그려낸다는 생각 자체가 원천 봉쇄됐다는 사실이다, p82
아랍인은 비스듬히 놓인 임의의 광원이 빛을 투과하지 않는 물체의 저항에 부딪힐 때, 그 물체의 그림자가 똑바로 선 벽면에 투영되는 가능한 모든 경우를 탐구했다. 이런 연구의 결과로, 동화에 나오는 하룬 알 라시드의 영토에서 삼각함수가 출현했다, p84
전자동 삼각함수 계산기로서 투시도법이 완벽하게 적용된 회화라는 혁명적인 발상을 가능하게 했다, p85
여기서 그들은 섀넌의 이론에 완전히 부합하는 한 가지 문제에 봉착했다. 신호를 필터링하면 언제나 신호의 강도가 약해진다는 것이다. 카메라 옵스큐라의 구멍을 줄이면 이미지가 선명해지지만 더 어두워졌고, 거꾸로 구멍을 크게 만들면 이미지가 밝아지지만 마치 여름의 숲처럼 뭉개져서 나왔다. 그러니 실제로 작동하는 카메라 옵스큐라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 이탈리아에서 나온 것도 당연했다. 이탈리아는 서유럽에서 햇빛이 가장 밝은 국가이기 때문이다, p86
예술공학자란, (…) 한 이미지를 본떠서 또 다른 이미지를 생산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처음으로 수공예적인 예술의 표준을 확립해서, 그 표준에 따라 하나의 시대 양식을 이루는 수많은 이미지의 가능성을 개방하고 그 이미지들을 실제로 제작할 수 있게 했던 이들을 가리킨다, p87
그런 측면에서 카메라 옵스큐라는 단순히 새로운 과학 장치 또는 장난감이 아니라 종교 전쟁의 무기였다, p93
비릴리오가 거듭 지적했듯이 뒤러나 다 빈치 같은 화가들은 카메라 옵스큐라의 이론과 실행에도 기여했지만, 최신식 총포에 맞서 성채를 짓고 도시를 방어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뒤러가 1527년에 완성한 성채건설학은 탄도학적 관점의 투시도법 이론서라 할 수 있다, p94
이 모든 질문에 대한 유일한 대답은, 브루넬레스키가 카메라 옵스큐라를 썼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14세기의 로저 베이컨과 16세기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가 바로 브루넬레스키였다는 말이다, p96
알베르티는 제목에서 밝혔다시피 수학자가 아니라 화가를 위해 이 논문을 썼다고 명시적으로 강조했으며, (…) 최고의 삼각함수표를 만들었던 레기오 몬타누스가 이탈리어 여행 중에 페라라에서 알베르티를 만난 적이 있다는 것이다, p100
카메라 옵스큐라는 정보의 광학적 전송과 광학적 저장을 최초로 결합하면서, 전송 기능은 완전히 자동화했지만 저장 기능은 그렇게 못 해서 사람 손을 빌렸다, p102
나는 여기서도 새로운 기술의 시험 대상이 여성이었다는 점만 짚고 넘어가겠다. 우리의 관심사는 미디어의 역사이지 사랑 이야기가 아니므로, 전반적인 상황의 목적에 관해 지나치게 추측을 남발하고 싶지는 않다, p102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알베르티의 암호론이다. 선도적인 암호학 역사가 데이비드 칸은, 이 책이 소위 컴퓨터 시대라는 오늘날까지도 모든 암호학의 근간을 제공한다고 단언한다, p103
"1457년, 독일인 구텐베르크가 활판인쇄 기술을 발명했을 무렵, 레온 바티스타도 {회화의 영역에서} 그와 유사한 것을 발견했다.", p105
※ 투시도법의 보편화와 인쇄술의 발명에서 유추할 수 있는 판화도 당연하게도 이 시기를 전후하여 성행
손으로 직접 쓰던 미디어를 새로이 기계적으로 완벽하게 복제할 수 있게 되면서 다른 수작업 기술에도 경쟁의 압력이 가해졌다는 것이다, p106
인쇄기술 덕분에 독학자가 나타날 수 있게 됐다는 것, 이것이 핵심이다, p107
유럽이 다른 문화권과 달리 르네상스 이후 연이어 또 다른 기술적 미디어들을 내놓게 된 역사적 토대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는 그 자신을 능가하게 될 다른 모든 것들, 사진에서 컴퓨터에 이르는 다른 모든 새로운 미디어들의 가능성을 개방했다, p108
※ 구텐베르크 이전에 금속 활자가 있던 우리나라는 그럼 왜? 인쇄술에 더불어 카메라 옵스큐라, 투시도법의 발명이 반드시 필요했다고 봐야 할 듯. 1800년대 대동여지도에 이르러서야 실제 이미지의 수공업적인 저장 시도가 나타났으나, 그나마도 기밀을 유출한다고 탄압 받았으니까? → 바로 다음 페이지에서 중국의 사례로 설명
투시도법이 단순히 미학적이고 예술적인 취향의 변동이 아니라 모든 광학적 가치에 대한 전면적인 기술적 재평가라는 사실이다, p111
송신부에서 군인 한 명이 시범을 보이면, 수신부에서 군인 12명이 당시 개발된 군대식 행진법에 따라 발을 맞추며 군인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하는 위협 동작을 시행했다는 것이다, p113
이와 같은 극대와 극소의 문제는 파스칼 철학의 절반이고 라이프니츠 미적분학의 전부다. 공교롭게도, 라이프니츠가 미적분학을 개발한 것도 하필이면 하위헌스와 어울리던 때였다, p115
매직 랜턴이라는 오락매체는 처음부터 오락용으로 개발된 것이 아니라 원래 군사적 기초 연구의 부산물 또는 폐기물이었다, p117
통신에서 시뮬레이션으로, 상징계에서 상상계로 이행하는 이 같은 운동은 에디슨이 축음기와 영화를 발명할 때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 p118
존재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유럽의 근대에 존재가 그 '표상'의 형태에 합치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표상이 존재를 대상으로 자리매김하여 주체에게 넘겨주게 되는데, 이는 일찍이 그리스나 로마에서는 없었던 일이었다, p119
카메라 옵스큐라 이후 백 년이나 지나서야 비로소 매직 랜턴이 이 세상에 등장할 수 있었던 까닭도 이제 다 설명했다, p120
그리하여 이러한 상황에서 구식 신앙을 기술적으로 무장하기 위한 대응책이 요구되었다, p120
광학적 미디어의 역사를 쓰면서 오락매체가 언제나 선전 기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숨기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p120
종교개혁은 적어도 유럽의 절반 가까운 지역에서 중세 교회 의례와 그 모든 광학적 광휘를 혁파하거나 문자 그대로 시커멓게 칠해버리고, 그것을 대신해서 흑백 단색조로 인쇄된 문자의 신비를 내세웠다, p121
공교롭게도, 예수회는 직업 군이이었던 한 남자의 작품이다, p122
프로테스탄트의 새로운 미디어인 활판인쇄에 맞서 반종교개혁이 무엇으로 응수했는지 명백해졌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오감을 충족하는 환영의 극장이었고, 문자에 천착하는 대신 그 의미를 감각적 환각으로 즉각 체험하는 읽기의 방식이었다, p124
로욜라가 영성 수련을 통해 '십자가의 길'을 환각으로 보았다면, 키르허는 스미크로스코프라는 광학 장치를 통해 '십자가의 길'을 빠르게 넘어가는 이미지 형태로 평신도들에게 상연했다. 그러니까 영화의 전신이 바로 평신도를 개종시키는 비법이었던 것이다, p126
핍 박스는 휴대 가능한 작은 상자에 관람용 구멍이 한두 개 뚫려 있는 이미지 상영 장치로, 대개 유랑 극단 사람이 등에 짊어지고 다녔다, p128
광학적 환영을 동원한 반종교개혁이 전개되면서 기존의 단순한 극장이 뭔가 부족해 보이기 시작했다, p129
널리 알려진 트롱프뢰유 회화는 바로크 건축의 가장 중대한 혁신에 속한다. 이 기법은 교회 건축에서 삼차원 건물과 이차원 회화 사이의 이음매가 눈에 띄지 않도록 해서, 천장에 그려진 천상의 광경과 그 모든 성인들의 모습이 마치 교회 건물과 투시도법적 지각에 통합된 일부분인 것처럼 보이도록 눈속임하는 데 쓰였다, p130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예수회극 무대와 그 친척뻘인 이탈리아 오페라 무대가 바로크의 새로운 극장 건축, 즉 절대주의 극장의 모델이 됐다는 사실이다, p135
반종교개혁의 이미지 기술로 변모한 극장 무대는 거의 모든 것을 조작하고 시뮬레이션할 수 있었지만 광원만은 그러지 못했다, p137
코르네유나 라신의 유명한 희곡 중에는 알렉산더격으로 3천 행을 넘는 것이 하나도 없다. 해석학적 문학 연구자들은 이를 텍스트 내재적인 관점에서 멋지게 설명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미학적 한계는 밀랍 초가 타는 시간이라는 기술적 한계에서 직접 연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p137
군주들은 거울의 방, 축제 행렬, 불꽃놀이를 통해 극히 계획적으로 광학적인 '눈속임 작품'으로 변모했고, 초를 그렇게 많이 재어 놓지 못한 가신들은 그 광경에 그저 머리만 조아렸다. 이때부터 절대주의 무대는 시대를 선도했다. 이미지의 정치는 절대주의 시대부터 생겨났으며, 당시에 비하면 오늘날의 정치적 이미지는 거의 미미해 보일 지경이다. 일요일 저녁 TV 인터뷰나 신문의 초상 사진은 낡은 절대주의적 광 독점을 답습하는 것에 불과하다, p138
새로운 광학적 미디어가 연극을 거쳐 어떻게 문학을 바꾸어 놓았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p139
바로 이때 글쓰기의 기술, 더 정확히 말해서 묘사적 글쓰기의 기술이 출현했다. 그것은 텍스트를 처음으로 영화 각본과 호환 가능한 것으로 변모시켰다, p140
그리하여 브로케스 이후에는 시인들도 그들의 눈을 무장하게 됐다. (…) 당시 최신작이었던 뉴턴의 광학에서, 시각은 핍 박스 식의 인공 보조 장치 없이는 거의 성립할 수 없는 일종의 기예로 변모한다, p142
그런데 브로케스는 전혀 달랐다. 그의 '물리적 시'는 자연물을 시적으로 지각하고, 묘사하고, 심지어 '생산'함으로써 비로소 존재할 수 있었다, p143
이것은 그들에게 새로운 글쓰기, 투시도법적 글쓰기를 부과한다, p144
눈 앞에 망원경 모양으로 오므린 손은 브레히트보다 훨씬 이전에 낮설게 하기 효과를 최초로 확립한 셈이다, p144
디드로와 그의 독일어 번역자 레싱이 등장한 다음부터 문학은 의사 광학적 미디어로 행세하기 시작했다, p146
계몽과 미신의 투쟁이란, 광학적 환영을 반종교개혁에서 분리해서 그보다 더 나은 목적을 부여하는 것으로 간단히 정의할 수 있다, p147
객관적 세계와 주관적 소여가 어떻게 다른지 진술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그 차이를 착취했던 성직자들의 눈속임도 완전히 폭로할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p147
람베르트는 이미 1759년에 자유투시도법이라는 전형적인 제목의 논문을 제출했다, p148
그 밝기는 광원의 밝기 k와 광원에서 나온 광선이 반사 지점에서 곡면의 법선과 이루는 각도 a에 의존한다. 그래서 1 = k x cos(a)이다, p149
이렇듯 현상학은 주체와 특히 그 광학적 가상에서 출발해서 사물의 객관적 본성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학문이고, 따라서 감각적 속임수나 그런 속임수를 쓰는 성직자들을 싹 쓸어버린다, p151
람베르트의 어린 친구이자 제자였던 칸트는 이 '초월광학'을 소위 '초월철학'으로 일반화하기만 하면 됐다. 안타깝게도 철학자들은 입에 담지 않을 말이지만, 달리 말하면 독일 관념론도 광학적 미디어의 역사에서 출현했다, p151
슈뢰퍼가 매직 랜턴과 연기 발생용 향로를 장치한 것을 보면, 어떻게 계몽과 미신, 심령 현상과 사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영화 기술을 향한 소망이 역사적으로 생성됐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 p158
로베르송은 최신 발명품인 볼타 전지를 써서 평범한 탄소봉 두 개에 전류를 흘렸다. 그가 두 탄소봉을 서로 가까이 붙여서 스파크를 일으키자 관객들은 얼이 빠졌다. (…) 이렇게 해서 탄소아크등이 발명되었다. 그것은 태양광이나 번개와 경쟁할 수 있는 최초의 인공조명으로서, 훗날 사진과 영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된다, p159
영화가 발명되기 전까지 적어도 상상계에서 그 소망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또 다른 미디어가 개발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낭만주의 문학이다, p159
지명수배, 출입국 관리, 법의학의 문제는 사진술이 발명되기 전까지 이론적으로나 실질적으로 해결이 전혀 불가능했다, p165
오로지 이런 묵독만이 모든 주체 안에서 내면성의 순수 토대를 확립할 수 있으며 그러면 바로 이 내면성이 읽은 내용의 순수 광학적 표상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헤겔의 유명한 말로 충분하리라 본다, p166
애초에 어떤 역사적 문학 형식이 문학의 영화화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창출했는지 파악하는 일이다, p168
반면 다른 문화권의 경우, 우리의 미디어 재벌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모든 감각적 지각의 전 지구적 식민화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생동하는 이미지의 구문론을 따라가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p169
배타적 독서 규칙의 예외에서 영화 스타의 역사적 준비 단계 같은 것을 읽어내기도 그리 어렵지는 않아 보인다, p176
하지만 이미 투시도법과 카메라 옵스큐라를 발견한 화가들 중에서 백화/흑화 현상 같은 악조건을 역이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p186
17세기에 특정 화학 물질의 백화/흑화를 다룬 최초의 실험은 니에프스와 다게르를 거쳐 사진 필름의 개발로 직결됐다. 신체적 장애와 물리적 악조건들은 현대로 향하는 기술적 길 위에 시체처럼 나뒹군다, p187
이 실험은 18세기에는 아직 사진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증거도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슐체는 실재계의 우연성을 기술적 미디어로 저장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p188
우리는 기본적으로 감광물질이 발견되고, 사용되고, 최적화되는 과정이 18세기에 화학이 성립하는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됐다는 것만 확인하면 된다, p189
허셜은 열의 물리적 구현이자 훗날 전쟁 무기의 매체로 쓰이게 되는 적외선을 발견했다, p190
그래서 드디어, 슐체가 발견하고 화학자 셸레가 심화 연구한 감광 물질이 뉴턴의 태양광 스펙트럼과 함께 같은 실험에서 만나게 됐다, p191
비가시적 빛이 이론에 끼친 영향은, 그것이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가시성의 가정을 완전히 뿌리 뽑았다는 것이다, p193
윤전기가 19세기 초반에 맨 처음 한 일은 옛 유럽 제국이 민주 국가로, 그러니까 종이가 무제한으로 공급되고 신문 지상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무제한으로 표출되는 국가로 이행하도록 확실하게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p194
1822년 에는 그가 직접 파리에서 '디오라마'를 개발했다. 이름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이것은 불투명한 부분과 투명한 부분을 조합해서 전통적 회화 작품에 매직 랜턴 효과를 덧붙인 파노라마였다, p197
첫째, 여러분은 요오드 처리한 은판과 수은이 우연히 같은 찬장에 놓일 수 있기까지 얼마나 기나긴 화학의 역사가 필요했는지 알아야 한다, p200
둘째, 리터가 자외선을 발견했을 때도 그랬지만, 다게르의 발견 이야기는 1800년대 이래 연구자들이 이론적으로 미리 주어진 기대치를 얼마나 계획적으로 추구했는지 확인시켜 준다, p201
프랑스라는 국가 입장에서, 다게르의 이 모든 명예는 명백하게 근대 저작권법과 직결됐다, p202
다게레오타이프를 통해 빛의 세기를 절대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인간의 눈으로는 상대적 광도 측정밖에 못 했는데, 다게레오타이프가 등장하면서 광도 측정술에 일대 변화가 일었다, p203
그것은 바로, 항공/위성/정찰 사진으로 촬영된 모든 대상을 조직적으로 파괴한다는 것이었다, p204
새뮤얼 모스는 1837년 근대적 방송 기술인 전기통신, 즉 전신을 상용화한 인물이었지만 결국은 화가이기도 했다. 모든 미디어는 이미 항상 멀티미디어일 뿐, 개별 미디어란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p204
그래서 실패한 화가 탈보트는 요오드화은과 질산은에 담근 종이로 바로 사진을 제작하는 기술적 프로세스를 탐구해서 마침내 성공했다, p205
새로운 광학의 전체 작동 과정에서 예술이 전부 빠지고 오로지 미디어만 남았다, p205
원본, 네거티브, 네거티브의 네거티브로 이어지는 일련의 연쇄를 통해 사진은 매스미디어의 가능성을 획득했다. (…) 같은 시기에 불이 고안한 회로대수라는 논리 연산도 바로 이런 진동에 의존해서 컴퓨터의 가능성을 열었다, p207
양피지 형태의 짐승 가죽은 1891년부터 사라졌지만, 그것을 대신해서 'Film'이라는 사진/영화용 감광지가 등장했다, p208
두 번째 선택지는, 예술적 미디어와 기술적 미디어를 실질적으로 독립분화시켜서 사진 촬영할 수 없는 것만 그리는 것이었다. (…) 역사적으로 일상생활에는 거의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는 것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으리라 본다, p211
초상화를 그릴 때면 제복과 장신구로 완전히 의관을 갖추던 귀족들이 카메라 앞에서는 부르주아의 소박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싶어 했던 것이다, p213
'이 소설 전체가 당대 프랑스 사회의 다게레오타이프와 같다'고 썼다. 여기서 문학은 처음으로 기술적 미디어의 보증을 받았다, p214
문학은 더 이상 호프만의 고독한 낭만적 독자로 재탄생한 카메라 옵스큐라를 위해 내적 이미지를 생산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훗날 아무 문제 없이 영화화될 수 있을 정도로 객관적이고 일관된 방식으로 광학적 라이트모티프들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p215
오컬트는 1850년경에 특히 전신 시스템을 흉내 내는 것으로 처음 시작됐는데, 이 방면의 인기 있는 여흥 거리 중 하나가 바로 심령사진을 이용한 유령사냥이었다, p216
그리하여 범죄자나 혐의자가 체포되면 즉각 두 장의 초상 사진을 촬영하는 절차가 도입됐다, p217
헤겔의 통찰에 따르면 언어는 보편적인 것에 속하기 때문에, 언어적 묘사는 개별적인 것을 이미 언제나 보편적인 것으로 변화시킨다, p219
독일제국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 1902년부터 모든 남녀에게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권리'를 법적으로 부여하여 사진의 오남용에 대항했다, p223
사진이 범죄학적으로 성공한 다음에야 비로소 옛 유럽에서 말하는 "예술"로 이름을 떨친다는 사실은 사진의 예술성을 주장하는 말들이 실제로 사진의 전략적 기능을 은폐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p223
발포의 시간적 연쇄와 장치 제작의 공간적 연쇄는 단일한 혁신의 양 측면으로서 똑같이 중요했다, p225
콜트 연발 권총의 대량 생산 기술은 숙련 노동자의 부족분을 벌충했고, 총기 기술은 군인의 부족분을 벌충했다, p225
영화는 사진에 비하면 채널 개념에 훨씬 가까이 다가와 있으며, 이는 영화가 사진보다 훨씬 고도의 산업적 조건을 요구한다는 것을 뜻한다. 상당수의 초기 영화 제작자가 정밀 기계 쪽 경력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p226
찰스 배비지가 라이프니츠의 미분방정식을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한 계차방정식으로 변환해서 첫 번째 원형적 컴퓨터를 만들던 바로 그때, 19세기의 미디어 기술은 생리적으로 지각 가능한 최소한의 차이보다 더 세밀한 수준에서 작동하는 기계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 기술적 질문이 갑자기 생리적 질문으로 전환되고, 기계를 만드는 일이 갑자기 인간의 감각을 측정하는 일로 바뀌었다, p227
렘베르트 식으로 물리적 자연의 광학에서 생리적 신체의 광학으로 이행한 것이 과학의 진정한 패러다임 변환이었다는 과감한 가설이 제기된다, p227
그는 3년 동안 고나련 도서를 전부 탐구하고 태양을 응시하는 등 자신의 눈을 대조적인 양 극단에 노출한 끝에, 시력을 상실하고 정신병원에 가야 할 처지가 됐다, p229
이미 1750년 경에는 양성 잔상이 1/8초 정도 지속되기 때문에 그보다 빠른 운동은 눈이 분간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p230
여기서 정말 유쾌한 일은, 스트로보스코프 효과를 발견한 사람들 중 하나가 다름 아닌 위대한 물리학자 마이클 패러데이라는 사실이다, p231
소위 '도플러 효과'의 발견자로 잘 알려진 이 과학자는, 너무 빨라서 광학적으로 지각할 수 없는 운동을 분석하기 위해 스트로보스코프식 원반을 체계적으로 역전시켰다, p234
우하티우스가 스트로보스코프식 원반과 매직 랜턴을 조합한 후, 마지막 남은 요소는 탈보트가 자동화한 카메라 옵스큐라였다, p236
제네바의 로돌페 퇴퍼나 괴팅겐 근교의 빌헬름 부시 같은 도안가들은 새로 등장한 단계별 드로잉을 잽싸게 또 다른 예술 형식으로 만들었다. 요컨대 그들은 만화를 발명했고, 이것이 나중에 애니메이션으로 발전했다, p237
스탠퍼드 주지사는 말이 달리는 동안 말굽 하나만 땅에 닿은 바로 그 순간의 흑백사진을 얻었다, p241
즉석 사진은 예전 르네상스 시대의 투시도법과 카메라 옵스큐라처럼 예술을 훈육해야 했다, p242
사진을 바루는 방식이 흡사 총과 같았기에 발명가가 직접 '연발 사진총'이라고 명명했다, p245
에디슨은 오늘날까지 쓰이는 35mm 포맷의 필름 롤을 골라 오늘날까지 시행되는 표준화된 천공 처리를 함으로써 이 문제를 단숨에 해결했다, p249
각각의 감각적 영역이 생리학적 계측 과정과 기술적 대체 과정을 거치고 나면, 이제 모든 미디어를 하나로 통합하는 멀티미디어 시스템이 창출되기 시작한다. 가능한 모든 영역에 동시에 도달하는 시뮬레이션, 요새 말하는 '가상현실'이 출현하는 것이다, p251
※ 광학적 환상을 만들어내는 게임이라는 미디어의 독자성
책의 역사를 말소하면서 등장하는 미디어 기술들은 어떤 역사적 규칙 같은 것을 보이는데, 그것은 바로 각각 고립된 감각적 장이 충분히 시험된 다음에야 비로소 서로 다른 장들의 전반적 접속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p252
그러므로 에디슨이 미국에 있었는데도 영화가 미국에서 탄생하지 않은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재현적 예술에서 광학적 미디어로의 전환이 일어난 곳은 예술을 잘 알았던 나라, 그러니까 롤랑의 노래를 빌어 말하자면 "감미로운 프랑스"였다, p253
살아 움직이는 사람을 영사할 수 있도록 저장하는 기술뿐만 아니라 특히 시체를 포름알데히드 처리해서 부패하지 않도록 저장하는 기술도 처음 개발했다. 아마 19세기 미디어 기술과 생리학의 연관성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사례도 없을 것이다, p254
지금 출현한 것은 새로운 상상계, 그것도 낭만주의 문학적 상상계가 아니라 기술적 상상계였다, p255
이제 남은 과제는 멜리에스의 기술적 발견을 특정 직종의 업무로 확립하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영화 편집자'가 탄생했다, p257
이동식 카메라로 피사체에 접근해 클로즈업하거나 다른 움직이는 대상을 따라갈 수 있게 되면서 서부영화라는 원형적 영화 장르가 촉발됐다는 것이다, p258
에드가 모랭의 탁월한 표현에 따르면, 관객은 "자신의 두뇌와 원격 통신하는 외재화된 망막"에 반응하듯이 영화에 반응한다, p260
이 우연한 기술적 현상을 본 배비지의 머릿속에 혁명적인 발상과 혁명적인 극장 조명 장치가 동시에 떠올랐다, p262
따라서 니벨룽의 반지는 옛 무성영화처럼 중간에 자막 화면이 끼어들어 흐름이 끊기는 일이 없는 일종의 총체영화로서 상연됐다, p265
그러므로 오늘날 연극배우들이 거의 원칙적으로 스포트라이트 조명 아래 서는 것은 영화를 흉내 낸 것이다, p266
러일전쟁에서 차르의 군대가 동 시베리아의 마지막 요새였던 뤼순 항을 철벽 수비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처음 활용했다. 일본군이 야간 공격을 감행하는 순간, 스포트라이트는 전장을 치명적인 영화 스튜디오로 변형시켰다, p266
반면 광학적 연극, 즉 극영화는 엄밀한 의미의 기술적 수단을 동원하여 영화 관객의 무의식적 심리 상태를 공격하고 변화시키는 진정한 심리기술이다, p268
무의식적 집중이 특정한 영화 기법으로 환원될 수 있다면, 우리는 인간을 더 이상 이상화해서 숭배하지 않고 직접 인간을 구축해서 최적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p269
극적으로 간단히 말해서, 이제 그들은 경험적/통계적 여성으로 대체된다. 경험적 여성이라면 일단 맨 먼저 영화 스타를 들 수 있다, p271
당시에는 여성, 어린이, 생활보호 대상자들이 영화관에 갔다. 하지만 1910년경 이러한 문학적 탈주에 두려움을 느낀 남성들이 영화 검열을 도입하거나, 혹은 남성적인 작가영화 또는 문예영화를 발명했다, p273
어떤 권력이 그런 루프를 프로그래밍했는지 질문해야 한다, p274
하지만 기술적 미디어는 이렇게 신체와 그 분신 간의 피드백 루프가 완전히 단절되는 것에 의해 정의된다, p277
둘째, 도플갱어에 관한 스티븐슨의 단편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역사상 가장 많이 영화화된 작품 축에 들었다, p278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삼중 참호망 바로 뒤에 있는 병참 지대는 군인들이 오락영화를 볼 수 있는 자유 지대이자 휴양 지대였고, 덕분에 헤니 포르텐 같은 영화 스타들은 참호의 핀업 걸이 됐다, p279
이러한 세계대전의 홍보 전략적 측면에서는 연합국이 우위에 있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선도적 영화 제작국이었던 미국이 모두 동맹국에 맞서 싸웠기 때문이다, p280
전쟁은 사진과 영화가 계몽과 선전의 도구로서 압도적인 힘이 있음을 보였습니다, p281
그는 유럽에 와서 선전 영화의 군중 장면을 촬영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참호 전선에 갔다. 하지만 전장에는 아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p283
참호 전선이 단순히 광학적으로 지각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군사적으로 지각되면 안 되는 것이라면, 영화로 통하는 길은 수직으로 내리꽂는 길뿐이었다, p285
투시도법과 탄도학의 구조적 상동성은 늦어도 제1차 세계대전기에 전쟁 기술로 실현됐다. 메스터의 교묘한 장치는 수백만km의 롤 필름으로 적어도 720만 km^2의 전장을 담았고, 거기서 기술을 더 향상시키려면 연쇄 살인과 연쇄 사진을 단일한 행위로 통합하는 수밖에 없었다, p286
기관총 조준기를 소형 영화 카메라와 결합해서 기관총이 발포될 때마다 한 프레임씩 촬영되도록 했다, p287
트래킹 쇼트로 완전히 해방된 카메라가 만들어낸 실험/오락영화들은 제1차 세계대전의 지각적 세계를 단번에 대중오락으로 탈바꿈시켰다, p290
전기 엔지니어들은 세계대전에서 무성영화의 시대를 끝장낼 가능성을 터득했다. 유성영화를 이끌어낸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의 기술들이었다, p290
덕분에 마그네틱 오디오테이프의 이론적 원리가 확립됐고, 이것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대량 생산 가능한 수준까지 발전했기 때문이다, p291
특히 발퀴레의 노래는 나중에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에도 등장하는데, 1876년 바이로이트 극장에서 매직 랜턴 효과와 함께 연주됐던 이 노래는 영화 속에서 베트남전의 헬리콥터 공격 장면에 삽입된다, p292
간단히 말해서, 제1차 세계대전은 에디슨의 전구를 진공관으로 만들었고, 그리하여 영화관의 연주자들을 퇴물로 만들었다, p292
그는 열대우림의 목재를 종류별로 전부 연구실에 들여와서 전구 필라멘트 소재로 쓸 수 있는지 시험했으며, 그렇게 해서 다게르가 의존했던 우연적 조합을 체계적으로 근절했다, p293
보다시피 TV는 페르디난트 브라운과 함께 위대한 첫걸음을 내딛는 수간에 영화 속 인물이 아니라 방정식을 재생했다, p294
진공관은 처음으로 물리적 비용의 개념과 파워의 개념을 분리시켰다, p294
다시 말해서, 고주파 송신기가 탄생한 것이다, p295
무선 송신기의 주된 기능은 지상 근무자와 정찰기 조종사 간에 피드백 루프를 제공하는 것으로, 상공에서만 보이는 적진 내 기물 중에서 어떤 것을 사진이나 영화로 촬영해야 하는지 조종사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p295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이행하는 기나긴 여정의 첫 단계는 명백히 전 세계의 기존 미디어 시스템을 운영이나 수익 상의 중단 없이 기술적으로 완전히 갈아엎는 것이었다. 이는 TV 시스템과 기술 일반을 둘러싼 분쟁에서 항상 반복되는 일로,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p302
하지만 영화를 흉내 낸 라디오 드라마는 기껏해야 영화의 느린 페이드인/페이드아웃 기법을 새로운 음향 예술로 이식하는 데 그쳤다. 앙드레 말로가 영화의 작동 원리라 칭했던 돌연한 커트와 몽타주는 라디오 드라마에 진입하지 못했다, p305
매 프레임이 광학적으로 영사되기 전후로 필름이 대기 루프를 돌면서 영상이 매 프레임마다 순간적으로 정지한 만큼의 시간을 벌충하는 방식이었다, p306
유성영화는 얼굴의 표현과 제스처 면에서 완벽한 진짜 일상성을 요구했다, p308
아주 추상적으로 말하면, 제2차 세계대전은 총력전 또는 '총체적 시뮬레이션'의 미명 아래 허구와 현실의 마지막 남은 차이를 무효화하는 것을 뜻했다. 까마득한 옜날부터 소위 경험주의와 소위 예술작품을 나누던 모든 벽이 평평해지는 것이다, p310
이렇게 가시적인 색채 스펙트럼 너머의 색채, 즉 적외선이나 레이더파 같은 것도 볼 수 있게 됐는데 가시적 색채가 뒤에서 주춤거릴 수는 없었다, p310
이처럼 총천연색을 둘러싼 전쟁은 1939년부터 시작해서 1965년 컬러TV가 등장하기까지 광학적 미디어의 전체 역사를 결정했다, p311
하지만 1967년 세 명의 의사들이 인간 같은 척추동물의 원추세포는 RGB만 인식하고 간상세포가 명암을 구별한다는 사실을 입증해서 노벨 생리학상을 받은 적이 있다, p313
화가들은 이러한 기술적 시각 모델을 화폭에 옮기기만 하면 됐다. 그리하여 유럽 최후의 대상 지향적 예술 운동이 탄생했다. 쇠라, 시냐크, 피사로 등의 소위 점묘파는 실제로 삼원색의 점을 찍어서 풍경화를 그렸다. 이 색점들은 먼저 눈 속에서, 그다음에 감각적 차원에서 서로 녹아들어 가산혼합을 일으켰다. 이는 조형예술이 광학적 미디어와 겨루었던 최후의 경쟁이었고, 그 이후에는 추상회화만 남았다, p315
라디오 송신기에 의존했던 전쟁 보도 음향이나 타자기에 의존했던 전쟁 보도 기사와 달리, 색채와 음향, 말과 소리의 멀티미디어 쇼를 창출하는 전쟁 보도 영화가 탄생했다, p317
이렇게 와이드스크린 영화가 탄생했다. 그것은 영화와 TV의 경쟁이 과열되기 직전에 도달한 영화관의 마지막 구세주였다, p317
예나 지금이나 TV는 소위 인간이 소망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넓은 의미에서 전쟁용 전자공학에서 파생된 민간용 부산물이다. 이 점은 확실해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확실히 해둬야 할 것은, TV의 개발 과정이 곧 섀넌의 정보 이론에서 명명된 모든 기능이 줄줄이 전자식으로 처음 실현되는 과정이었다는 사실이다, p318
한때는 상상계가 시지각과 회화에서 지배하던 곳에서 이제는 상징계가 승리를 구가했다. 그리고 오늘날 이 낱낱의 점이 그림의 기본 요소라는 뜻에서 '화소'라고 불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TV는 이미 영이나 뒤코 뒤 오롱의 색점 이론에 근접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p319
첫째, 선전 전문가들은 주민들을 TV에 물입시킬 수 있는 이미지의 흐름을 발명해야 했다. 이런 노력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스펙터클과 나치 전당 대회에서 최고의 결실을 보았다. 둘째, 기술자들은 무선 방송 시스템으로 TV 채널을 전기화한 후에 니프코브 원반도 진공관으로 교체해야 했다, p325
이 '아이코노스코프'라는 카메라를 개발한 즈보리킨의 말에 따르면, 원래 이 장치는 로켓 머리 부분에 장착해서 군사적 원격 정탐을 실현할 목적으로 발명됐다고 한다, p327
전송 채널은 초단파 무선, 송신관은 아이코노스코프, 수상관은 섀도 마스크 수상관, 이렇게 전 기능이 기계공학에서 전자공학으로 전환되면서 드디어 TV라는 하이테크 정보 시스템이 완성됐다, p327
이 새로운 시청각 미디어의 정치적 효과는 유성영화 대와 똑같았다. TV는 전국적인 국내 정치의 미디어가 됐다. 왜냐하면, 1) TV는 국어로 전송됐고, 2) TV의 극고주파로는 가청 범위가 60~70km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p328
TV는 하이테크 미디어지만 결국은 자체적 원리에 따라 무기로 기능하는 광학적 미디어의 일종이다. 그런 까닭에, 제2차 세계대전이 없었다면 TV도 전 세계로 세력을 확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p329
TV 송신기로 쓰이던 바로 그 고주파관이 레이더 감시소로 이송됐고, TV 수상기로 쓰이던 바로 그 스크린이 비가시적인 적을 레이더 스크린 상에 가시화하는 데 쓰였다. 오락매체가 아무런 마찰이나 그에 따른 손실 없이 전쟁 기술로 전환된 것이다, p331
1935년에는 나치 전당대회에서 알베르트 슈페어에 의해 오용되어 최초의 진정한 비물질적 건축으로 변모했다, p331
브루흐는 폭탄 안에 TV 카메라를 설치해서, 적이 아무리 도망치려고 해도 폭탄이 스스로 적을 추적해서 결국 폭파시킬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제2차 세계대전은 피드백 루프를 이용한 최초의 자가 유도식 무기 체계를 탄생시켰고, 그때부터 모든 근대 철학의 주체인 '인간'은 그냥 잉여가 되었다, p333
소니사의 첫 번째 비디오 레코더는 원래 가정용이 아니라 쇼핑센터, 감옥, 그 외 권력 핵심부의 감시 목적으로 개발됐다, p337
광섬유는 TV 신호 외에도 전자적으로 변환된 음향, 텍스트, 컴퓨터 데이터를 전달할 수 있다. 그리하여 빛은 헤겔이 찬양한 대로 '일반적 미디어'로 격상된다, p341
디지털 이미지 처리 방식은 상상적인 것의 마지막 하나까지 전부 용해시킨다, p345
이처럼 가상현실은 감각을 폭격하는 것으로서, 특히 폭격기 조종사 훈련생의 감각을 폭격하는 것으로서 탄생했다, p347
컴퓨터는 애초에 차원이 없고 따라서 이미지도 ㅇ벗기 때문에 모든 시청각 데이터를 자체적으로 연산해야 한다, p347
동구권은 확실히 패배했다. 그것은 소비자 수준에서는 선전용 TV가, 생산자 수준에서는 컴퓨터 수출 금지가 효력을 발휘한 결과다, p350